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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자의 도마일기

만들어진 신

 

<무신론인가 유신론인가?>

 

우리는 신이 있다 없다거나 혹은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거나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거나,

인간의 역할과 신의 역할이 어떻다거나 등등, 사실 어떤 과학자들도, 어떤 신학자들도

실증한 적이 없는 문제를 이분법적이거나 양비론적 관점에서 생각합니다.

길들여 진 것이지요.

종교적 신념의 선택은 사회적 혹은 문화적인 강압이 있을 수 있지만 신앙의 체험은

아주 개별적입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신념인데 만들어진 신을 선택한다면 결국

자신의 영혼을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 무신론자의 가장 큰 딜레마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은 영혼과 맞닿아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어지는 것은

단지 지적 능력의 차이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인정하고 아주 소중히 간직한다는 것입니다.

 

< 무신론과 진화론의 결합의 오류>

 

무신론자라고해서 다 진화론자가 아니고 진화론자라고 해서 다 무신론자는 아닐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신을 믿지 않는 다는 관점에서 무신은 이해가 갑니다만, 그 이론적 근거로서

진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사실 매우 잘못된 뿌리를 잡은 것입니다.

 

무기물에서 우연히 생성된 유기체에서 세포가 생성되고 그 세포들이 시간이 가면서 주어진

환경의 산물로서 각기 다른 모습의 생명체로 진화한다는 것이 다윈 이후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본 단편적 사상들의 유사성에서 유추한 이론일 뿐이지요.

신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진화에도 증거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면 지금 원숭이는 왜 진화하지 못했을까요?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지금 원숭이들과 우리 인간들의 차이는 뭍으로 올라온 시간이 차이가 나는

어류 혹은 양서류일까요? 그렇다면 원숭이는 언제 인간으로 진화할까요?

그리고 인간은 진화의 최종 단계 모습일까요?  

 

과학의 근거가 되는 법칙이란 것은 논리적으로 합당하면서 동일한 실험을 통해 반복적으로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실이어야 함에도 진화론적 과학자들은 이런 그들 논리의

근거가 되는 과학의 명제 조차 부정하는 오류를 종종 범하고 있습니다.

진화가 과학이라면 지금까지의 근거를 통해 앞선 질문들에 대해 답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지요. 진화는 관찰의 결과이지 실험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멘델의 법칙은 법칙이지만 진화는 이론이지요.

 

진화는 창조론과 마찬가지로 언제까지나 이론일 것입니다. 실험이 불가한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혼이라든지 신적인 현상들에 대한 체험은 오히려 반복적으로 관찰되고 실험되어

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창조론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주장이 더 과학적일지도 모르지요.

 

때문에 진화론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인간이 또 다른 양자역학적인 물질로 진화한다는

스토리의 소설을 쓰기도 합니다.  

 

요약하자면 불가지한 것들에 대한 상상력이 신을 만들기도 하고 진화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신론 즉 불가지한 것에 대해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믿음이

과학이란 이름의 전혀 비과학적인 추론과 결합한 것이 이런 만들어진 신의 논쟁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아주 개별적인 체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공감으로 인해 전파됩니다.

그런 체험적 개인들이 많다면, 그것이 종교란 이름과 행위로 형식화 되어 있다면

그것은 '다름'이지 '틀림'이 아니며 존중 받아야 할 것입니다.

 

< 만들어진 신의 효용>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종교적인 폐단으로부터 벗어나 인류 양심으로 찾고

도덕적으로 선을 행하며 상호 반목이 아니라 협력하여 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적 망상에서 벗어나라고 말하고 싶었고 그 망상의 실체를 사례로서 밝히는 것은

의미가 있었으나, 망상의 본질론으로 들어간 것이 그의 오류라고 생각됩니다.

무신의 관점이 아닌 진화론적 무신의 관점을 선택한 것이 잘못된 것이지요.

 

종교적 망상은 지금 지구상의 모든 분쟁의 근원입니다.

예수의 시대 역시 이런 종교적 망상의 시대였고 그 후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망상의

기미는 조금도 수그러들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가 거듭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보다 정확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신

혹은 스스로 존재하는 신의 모습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는 이 책을 보면서 2005년도 상영된 킹덤 오브 헤븐이라는 십자군 전쟁 당시의

이슬람과 기독교 모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두고 싸우는 영화를 떠올립니다.

어렴풋하지만 종교적 망상에 학습된 사람이었던 주인공이 예수가 죽은 골고다 언덕에서도

신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고뇌하다가 아이를 잃고 그 슬픔으로 자살한 아내를 떠올리며 이런 대사를 합니다.

당신은 지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 속에 영원이 있어라고

그리고는 이슬람의 예루살렘 침공에 맞서 성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마침내 협상을 통해 성을 주고 사람을 구합니다.

 

제 기억으로 주인공은 종교적 망상을 인간의 선한 양심과 인류애적 화합 의지로 극복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예수가 가르치려고 했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육신한 신의 아들 예수는 인간 위에 군림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예수를 등에 업고 인간 위에 군림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영토와 자원과 부의 획득을 위해 전쟁을 하고 살상을 저질러왔습니다.

선을 가장한 악이 승리하는 세월이었습니다.

 

때문에 오늘날 예수의 가르침이 더욱 공감을 가지는 것은 진정 선한 모습으로 선의 편에서

악과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력을 기르라는 것이 아니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우리가 영적 존재임을(어쩌면 지금의 인간과는 다른 보다 진화된 모습이겠지요?) 알고

선을 행하고 나눔으로써 강해지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종교적 망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촉구하는 인간 양심의 소리라고 저는 생각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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