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이야기(CEO연구)

[CEO 연구] 새우깡 사태를 통한 위기 관리

허심만통 2008. 3. 21. 18:53

 

Q: 우리 회사 음료수 마시고 2명이 죽었다고? 이 사태를 어떻게… 

유명 식품회사인 잘팔려식품의 임원 안심해 이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차 안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뭐 좋은 노래 없나며 이리 저리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던 안 이사의 귀에 낯익은

회사 이름이 들리기 시작했다.
"오늘 새벽 서울 송파구에서 잘팔려식품이 제조한 음료수를 마신 학생 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경기 지역에서도 같은 회사 음료수를 마신 남성 3명이 혼수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안 이사는 귀를 의심했다.

어라~ 잘팔려식품? 아니, 우리 회사잖아!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회사에 도착하니 7층 대회의실에는 간부 사원 50여명이 모여 와글거리고 있었다.

6층 홍보실에는 어느 새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

하지만 회사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방향을 못 잡고 있다. 속수무책이랄까.

극도의 혼란과 당황만이 대회의실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때 절망적인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뭐 좀 대안을 내봐요, 대안을. 도대체 뭐부터 해야 합니까?"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사장님의 외침이었다.

순간 나직언 전무가 말문을 열었다."우선 피해자 가족들을 방문해 보상해 주겠다는 뜻을 밝혀야 합니다.

다음엔 사장님의 기자회견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용서를 빈다고 밝히시지요."

순간 사장님의 하얗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이때 평소 사장님의 오른팔로 통하는 김요령 상무가 재빨리 끼어든다.

 "안됩니다. 아직 사고의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의 가족을 만나 보상을 논의하면

 마치 우리가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특히 사장님이 직접 나서서 사과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절대 반대입니다. CEO는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CEO를 방패막이로 쓸 수는 없습니다."

역시 김상무야!김 상무를 바라보는 사장님의 눈빛이 촉촉하게 젖어있다. 하지만 감동의 순간도 잠시.

영업담당 김판매 상무가 대회의장으로 뛰어들며 소리친다.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전국적으로 우리 회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음료수뿐 아니라 우리 회사의 모든 제품에 대해 유통업체의 반품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UCC와 블로그에서도 난리가 났습니다. 어떤 블로그에서는 농약 대신 잘팔려식품 음료수를 써라,

살충 효과는 잘팔려식품 음료가 최고라는 패러디 광고도 등장했습니다."

안심해 이사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 꿈이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무너지는가?

지난 20년간 청춘을 바쳐 일했던 내 삶의 터전이 이렇게 산산이 부서지고야 마는가?

잘팔려식품을 살리기 위해 어떤 의사 결정이 필요할까?

A: 위기 대응팀 구성… 24시간 안에 회사 입장 표명하라

1. 24시간 안에 입을 열어라.

잘팔려식품처럼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회사가 빠지기 쉬운 첫 번째 유혹은 침묵이다. 침묵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정말로 모르기 때문이다. 위기에 빠진 회사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호떡집에 불 난 상황 이다. 

실제로 지난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시공사인 동아건설은 사건 발생 4시간이 지나도록 어떠한 회사의 공식적

입장도 내놓지 못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우리 회사가 만든 다리가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무너졌다고 가정해 보라. 과연 어떤 회사가 허둥대지 않겠는가?

그 동안 시간은 흘러가고 나쁜 여론은 무서운 속도로 확대 재생산된다.

침묵하는 또 다른 이유는 소위 신중론 때문이다. 여론을 좀 더 지켜본 후 대응하지.

확실한 우리 잘못도 아닌데 괜히 나섰다가 완전히 죄인으로 낙인 찍히는 것 아니야?

이런 신중론은 정보의 공백을 낳는다.

여론은 위기를 맞은 회사에 관심이 많은데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관심, 즉 정보의 공백은 누가 매울 것인가?

결국 카더라 통신 또는 경쟁 회사의 소식통이 메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남에 의해서 채워진 정보는 우리 회사에 불리한 내용일 수밖에 없다.

위기를 맞은 회사가 빠지기 쉬운 두 번째 유혹은 바로 거짓말이다. 에스원의 사례를 보자.

지난해 9월 경비업체 직원이 강도로 위장해 고객의 집을 터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에스원은 "범인은 현직이 아니라 퇴직 직원"이라고 둘러댔다.

거짓말이 들통나는 데는 불과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결과 사장은 옷을 벗게 됐다.

김승연 회장의 폭행사건도 거짓말이 위기를 키운 대표적 예다.

만약 김 회장이 처음부터 자식을 아끼는 부모의 마음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밝혔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CEO의 구속과 실형 선고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다시 잘팔려식품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아직 사고의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사과 성명을 내지 말자는 김요령 상무의 주장은 잘못된 판단이다.

위기에 빠진 기업의 첫 입장 표명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사고 원인을 굳이 완벽하게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첫 입장 표명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내용은 대부분 3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

둘째, 원인 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

셋째, 우리 회사의 잘못이라면 어떠한 책임도 회피하지 않겠다.

이처럼 간단한 메시지를 통해 정보의 공백을 메우고 우리 회사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라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반응 속도다.

 

새우깡 케이스가 발생했을 경우 대처하는 2단계  

2. 입을 단일화하고 내부를 통제하라.

위기 상황에서 빠른 첫 대응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입(대외창구)의 단일화와 내부 통제다.

잘팔려식품에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장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물론 직원들과 거래업체다.

그 다음은? 아마도 언론, 경찰, 정보기관, 소비자단체 등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정보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소스는 단연 해당 기업의 직원들이다.

직원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들이 때로는 가장 치명적인 정보를 노출한다.

예를 들어 기자가 잘팔려식품의 어느 직원에게 "평소 식품안전에 대해 충분한 교육을 받았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글쎄요, 특별히 받은 기억이 없는데요"라고 대답했다면

다음날 신문에는 아마도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릴 것이다.

" 잘팔려식품, 평소에 식품안전 교육에 소홀한 것으로 드러나…".

이렇게 한번 활자화가 되고 나면 그것은 사실 여부를 떠나 두고두고 이 회사에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가 나면 제일 먼저 할 일은 회사 내부로부터 나가는 정보를 통제하는 일이다.

위기 상황에선 우선 회사의 대변인을 정해야 한다.

그리고 외부와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그 대변인을 통해서만 이뤄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물론 다른 모든 직원들에겐 함구령을 내려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입의 단일화를 위한 조치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내부 직원들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가 닥치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일손을 놓고 위기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생산성이 엄청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가 왔을 때 직원들을 안심하게 만들고

애사심(愛社心)을 불어넣어 그들이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드는 게 위기관리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이렇게 입을 단일화하고 직원들의 동요를 막는 최고의 방법은 CEO가 직원들에게 직접 보내는 이메일이나 연설이다.

9·11 테러 당시 쌍둥이 빌딩을 본사로 쓰던 회사가 있었다. 바로 모건스탠리다. 모두들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모건스탠리는 교과서적인 위기 관리 능력을 발휘해 위기를 이겨냈다.

사건 당일 모건스탠리가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전 직원의 함구령이었다.

사건 다음날 오전 9시30분 비록 본사는 불타 사라졌지만 CEO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했다.

대다수의 직원은 살아있다.

모건스탠리는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월스트리트는 이 정도 충격에 무너지지 않는다.

당시 모건스탠리 본사의 직원 수는 3500명이었지만 대중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는 CEO의 목소리, 단 하나였다.

3. 위기 관리 팀을 구축하라.

위기관리란 수많은 다리를 가진 문어와의 싸움과도 같다. 정부, 시민단체, 언론 등 각 부분이 동시에 밀어닥치면 정신이 없다.

그러다 보면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기 쉽고, 차질이 생기면 낭패감으로 일이 더욱 꼬이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상황을 장악하고 통제할 위기관리팀이 필요하다.

잘팔려식품의 경우 위기관리팀을 제대로 꾸리기 위해선 9개의 직책이 필요하다.

위기관리 팀장, 대(對)정부 팀장, 소비자 관계 팀장, 스토리 팀장(회사 논리 개발 담당), 세일즈 마케팅 팀장,

언론 팀장, 제조분야 전문가, 대변인, 변호사 등이다.

위기관리팀을 구성할 때 중요한 기준은 멤버들의 현 직책을 고려하지 말고 각자의 자질과 경험을 고려해 팀을 구성하는 것이다.

예컨대 위기가 관리 부문에서 일어났다고 가정하자.

그렇다고 해서 자질 여부에 관계없이 무조건 관리 담당 중역을 팀장 또는 중요한 역할로 임명하는 방식은 잘못된 판단이다.

관리 담당 중역은 대체로 판단력, 순발력보다는 꼼꼼하게 챙기고 관리하는 능력이 더 발달돼 있다.

이런 사람에게 순간의 판단력과 순발력이 요구되는 일을 맡기면 자칫 큰 실수가 나올 수 있다.


4. CEO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라.

잘팔려식품의 두 임원은 위기상황에서 팽팽히 맞섰다.

한 명은 CEO가 지금 당장 사과성명을 발표해야 한다,

다른 한 명은 CEO를 방패막이로 써서는 안 된다는 정 반대 주장을 펴고 있다.

CEO는 과연 언제 등장해야 할까?

이에 대한 판단 기준은 두 가지다. 하나는 회사의 잘못 여부, 다른 하나는 이 사건이 인명 피해와 관련이 있느냐다.

만약 회사가 결백에 대한 100% 확신이 있다면 이때는 CEO가 나서야 한다.

CEO가 직접 우리 회사가 잘못이 있다면 내일 당장 회사 문을 닫겠다는 과격한 표현을 써가며 대응하는 게 좋다.

과거 공업용 우지 파동으로 고초를 겪은 A라면의 경우는 반면교사다.

회사 잘못이 없었는데도 초기에 회사가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아 타격이 커졌다.

나중에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 때는 이미 시장점유율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후였다.

만일 회사가 잘못이 있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엔 CEO가 직접 나서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을 경우가 있고, 그럴 필요가 없을 때도 있다.

이것은 고도의 판단 문제다.

하지만, 사건이 인명과 관계된 이슈라면 어떤 경우에도 가급적 CEO가 직접 나서서 사죄를 구하고 해명하는 게 좋다.

그래야만 이 회사는 고객의 생명과 안전을 소중하게 여기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어줄 수 있다.

잘팔려식품의 경우 이미 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때는 우리 회사의 잘잘못을 떠나, 만약 외부에서 누군가가 독극물을 음료수 안에 주입했더라도,

무조건 CEO가 사과하고 비통한 심정을 표현하는 게 옳다.

CEO의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중요하다.

성수대교 붕괴 당시 동아건설의 CEO는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깔끔하게 정돈된 사무실에서 전하지 않았다.

사고 현장을 직접 방문해 끊어진 다리를 쳐다보며 비통함과 사과의 마음을 진실되게 전했다.

이 장면을 본 국민들의 마음 한 켠에선 동아건설에 대한 분노가 연민으로 바뀌어갔다.

결국 그렇게 많은 사상자를 내고도 CEO는 구속을 면하고, 나쁜 회사라는 이미지를 피할 수 있었다.

잘팔려식품이 위기관리의 몇 가지 포인트만 제대로 실천한다면 안심해 이사의 삶의 터전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최철규 세계경영연구원(IGM)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