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연구] 바지 사장
송 사장은 대기업 임원으로 있다 얼마 전 중소기업의 전문경영인으로 옮긴 경우다.
대표이사이면서 사장을 맡았으니 남들은 최고경영자로 성공했다고 말한다.
송 사장이 사장을 맡은 중소기업은 겉으로는 중소기업이었지만,
대기업의 계열사로서 엄청난 자금을 바탕으로 신기술을 개발한 회사였다.
때문에 송 사장 역시 처음에는 대기업에서의 경력과 탁월한 학벌을 바탕으로 의욕에 넘쳤고,
또 제대로 한번 중소기업을 경영해 대기업 못지않은 탄탄한 회사로 키우겠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회사의 상황과 잘잘못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개인기업에서 성장한 사기업인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진 회장이 뒤에 버티고 있으며,
무엇보다 500명도 되지 않는 회사에 파벌이 심해도 너무 심한 상태였다.
여러 계열사를 구조 조정하는 과정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저마다 ‘끼리끼리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K대·S대·D대 라인이 있는가 하면, 남쪽파·동남파·중부파 등으로 모임이 잦다고 했다.
사규에 정한 직제가 있고, 세부 지침에 의한 직무규정이 있음에도
중요한 의사결정은 파벌과 서열에 따라 정해진다고 하니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올 초에는 계열사 출신별로 신년회를 열고 등산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10년도 되지 않은 회사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누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그냥 회사를 그만둘까?
너무 많은 고민과 갈등으로 인해 출근하기조차 싫다. 사장이 이러니 직원들은 오죽하랴?
두 번째 문제는 회사 소유주인 회장의 관심은 기업의 성장과 발전이 아니라 다른 데 있다는 것이었다.
중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수억 원을 들여 신기술을 개발하려고 하지만, 회장은 그 돈으로 주식·펀드·부동산에 투자하려고 한다. 개발하고자 하는 기술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얻고 국가의 지원자금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방해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회사 소유주인 회장이었던 것이다.
송 사장은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역할이 거의 없다.
중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배제되고, 정책수립회의에도 불러 주지 않는다.
회장은 직원들이나 잘 관리하라고 하는데, 정작 직원들은 송 사장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바지저고리로 보이는 전문경영자로서 출퇴근이 편할 리 없다. 곧바로 다른 곳으로 옮겨갈까 생각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누군가는 회사를 경영해야 한다. 그나마 현재 상황의 회사 직원들은 누가 관리할 것인가?
회사가 망해 문을 닫을 시기가 온다고 하더라도 그 때까지는 누군가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50대 중반에 들어서는 그에게
지금만큼이나마 고액의 연봉을 주며 임원으로 앉히려는 데는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