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이야기(CEO연구)

[CEO 연구] 레고의 위기 극복 사례

허심만통 2009. 6. 25. 16:59

 

손재주가 좋았던 가난한 목수 크리스티안센은 평소 조카들에게 나무 장난감을 만들어 주곤 했다. 대공황이 위세를 떨치던 1932년, 일감이 줄어들자 크리스티안센은 궁여지책으로 나무 장난감을 내다 팔기 시작했다. 장난감이 의외로 인기를 끌자, 크리스티안센은 2년 후 회사 이름을 '레고'로 짓고 장난감 사업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목수였던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직원 10명을 데리고 덴마크의 소도시 빌룬트에서 창업했다.

레고는 창립 후 오랜 세월 장난감, 특히 블록 분야에서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레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천적(天敵)을 만나게 된다. 기존 장난감과는 차원이 다른 비디오·컴퓨터 게임이라는 외래종이 어린 고객들을 빼앗아가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레고의 활동 영역도 점차 줄어들었다. 트렌드를 선도하던 레고가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지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러나 레고 역사상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이 시기에 찾아왔다. 레고는 두 가지 생각의 굴레를 깨뜨렸다. '레고는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레고의 고객은 어린이'라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 레고는 1998년 MIT대와 손잡고 움직이는 레고 로봇인 '마인드스톰'을 출시했고, 1999년에는 어른과 마니아 고객층을 겨냥한 '스타워즈' 시리즈를 내놓았다.

1990년대 이후 레고는 닌텐도나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비디오 게임기에 어린 고객들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대응책으로 레고는 스스로 비디오 게임 시장에 뛰어드는 한편, 테마파크(레고랜드)와 의류, 영화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나갔다. 다른 한편으로 '스타워즈 시리즈'와 '해리포터 시리즈' 등 영화를 소재로 한 제품을 출시하며 상품 구성을 어린이 중심에서 성인 고객층으로 확대했다.

시작은 좋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오히려 기존의 어린이 고객이 떨어져 나갔고, 무리한 사업 확장 과정에서 쌓인 빚으로 자금난에 시달려야 했다. 1998년에는 창립(1932년) 이후 첫 적자를 기록했고, 2004년에는 18억 덴마크크로네(현재 환율로 약 4300억원)에 이르는 큰 적자를 기록했다.

"의욕이 앞서 너무 무리하게 확장을 했던 것이 문제였어요. 그것도 아주 빠르게 말이죠." 크누드스톱 사장은 당시의 패인(敗因)을 설명하며 앞에 있던 레고 블록을 지그재그로 아무렇게나 겹쳐 쌓아 올렸다.

"저는 CEO가 된 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분류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잘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다시 시작한 거죠." 그는 자신이 쌓았던 블록을 뜯어낸 후 이번에는 하나씩 위로 똑바로 쌓아 올리며 말했다.

크누드스톱 사장은 취임 후 비핵심 사업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빌룬트와 미국, 영국, 독일에 있는 레고랜드 4곳의 지분 70%를 사모펀드에 팔았다. (나머지 30%는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 의류와 영화 등의 사업도 매각한 후, 브랜드 이름만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라이선스로 전환했다. 대신 주력인 장난감(레고 블록) 사업에 집중했다. 성인 고객을 겨냥한 모델을 꾸준히 내놓는 한편, 기존 어린이용 모델인 '듀플로(Duplo) 시리즈'를 보완해 나갔다.

레고는 2005년 흑자로 전환했으며, 지난해에는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매출이 18.7%, 순이익이 32 % 급증하는 성과를 올렸다. 경제가 어려울 땐 부모들이 장난감 하나도 유명하고, 안전하고, 튼튼한 것을 고르기 때문이라는 분석과 함께, 경제위기에 앞서 일찌감치 구조조정을 했던 것이 보약이 됐다는 분석이 함께 나왔다.

―잘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요? 결과가 좋았다고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보이나요? (웃음) 하지만 못하는 걸 계속 붙잡고 있을 순 없잖아요."

―잘하는 것만 하는 것도 좋지만, 요즘처럼 변화가 심한 상황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나요?

"도전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서두르다 자신의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거지요. 기업은 5년에 한번 정도 새로운 도전에 나서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1년에 5번씩 도전하는 건 욕심입니다. 그렇게 해야 변화에 올바르게 적응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