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속의 지혜
저속 배달 자장면집
허심만통
2009. 7. 22. 03:16
효창공원 뒤 한적한 거리에 숨은 듯 자리 잡은 가게 앞에 이르자
여닫이 현관에 내걸린 범상치 않은 문구가 나를 맞이한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단 한 그릇 먹어 보고
눈물을 흘려 줄 음식을 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만들고 싶다.
21세기가 기다리고 있기에」
나는 맛도 맛이지만, 자장면 한 그릇 앞에서 이런 숙연한 시구를 뽑아내는
주인장이 더 궁금해졌다. 다섯 평쯤 되는 가게 안을 둘러보니 아까 현관문에
내걸린 시구만큼이나 독특한 글귀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뛴다.
「영업시작 11시37분, 문 닫는 시간 8시31분」
아니, 30분이면 30분이지 37분은 또 뭐란 말인가.
황당해하는 내게 주인아저씨는 칼로 무 써는 듯한 말투로 대답한다.
“경험상 그때가 되어야 밀가루가 익고 자장이 맛있어요.”
“그런데 왜 굳이 37분이냐고요, 30분이면 안 되나요?”
“그렇게 분 단위로 체크해야 두리뭉실해지지 않아요. 그 시간에 나를 맞추는 거죠.”
벽을 둘러보니 또 하나 괴이한 문구가 포착된다.
「배달 속도 느림. 저속 배달」
또다시 의아한 표정을 지으니 이제는 알아서 설명을 한다.
“수타 자장면이다 보니 한 그릇 만드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타산이 안 맞으니 종업원도 못 써요.
아내가 배달을 하는데 면허 딴 지 얼마 안 돼서 오토바이 타고 뽈뽈뽈 간다고요.
그러니 저속 배달이지.”
- 김형민의『마음이 배부른 식당』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