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운뒤에야 비워진다
야구는 한 번에 3점을 낼 수도 있고,
4점을 낼 수도 있는 경기다.
그렇지만 3점을 내든, 4점을 내든 일단은 루에 나가야 한다.
루에 있는 선수, 즉 주자를 다음 루에 진루시켜
홈까지 보내야 득점이 되는 거다.
루를 채운 다음 비우는 게 야구의 득점이다.
채움과 비움의 반복이다.
모자라면 채우고, 넘치면 비운다.
딱 우리네 인생과 흡하지 않은가.
홈런을 쳤다고 해서 바로 점수를 주지 않는다.
홈런을 친 타자가 1, 2, 3루를 차례차례 다 밟은 뒤
마지막으로 홈플레이트까지 밟아야 비로소 1점을 준다.
루를 하나라도 밟지 않으면 득점이 인정되지 않는다.
(김성근, <야신 김성근, 꼴찌를 일등으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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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경기가 채움과 비움을 반복하는 경기이듯
우리의 삶도 채움과 비움의 과정을 반복합니다.
채우는 것이 먼저인지, 비우는 것이 먼저인지를 따져 봅니다.
김성근 감독은 채움이 우선이라고 합니다.
1루, 2루, 3루를 차례로 채우고 나서야 루를 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우기 위해서는 먼저 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먼저 비워야 채울 수 있다며 비우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채우기 전에 비우기에만 치중하는 것은
물병에 물을 조금 받다가 곧 버리는 것을 반복함으로써
결국 물병을 채우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또한 비움이 채움보다 먼저라며 비움의 상태로 있겠다는 것은
끝까지 득점을 하지 않고 0점이라는 상태에 머물러 있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채움보다 비움에 우선을 두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봅니다.
깨끗한 노트를 사서 몇 장 쓰다가 버리고
다시 새로운 노트를 사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과거를 모두 지우고
새롭게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결국 새로 산 노트도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새롭게 시작하긴 하지만 자신을 차곡차곡 채워가기에 앞서
비우는 것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에 끝내 자신을 채울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두 가지 지식으로 모든 것을 다 안다며
자신의 얄팍한 지식을 온 세상에 드러내놓는 사람들도 이런 사람들입니다.
야구에서 1루나 2루만 밟고 자신이 득점을 했다고 우기는 꼴입니다.
비우기에 앞서 채워야 한다는 자그마한 진리를 깨닫는 아침입니다.
오늘은 무엇으로 자신을 채워 나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아침이기도 하며,
지식과 경험으로 채워져 지혜로 넘치기를 꿈꾸는 아침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