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가 영웅을 만든다

1874년 오늘(11월 30일) 영국의 위대한 정치인 윈스턴 처칠이 태어났습니다. 처칠은 키가 160㎝를 겨우 넘긴, 시쳇말로 ‘루저’였습니다. 귀족 가문인 스펜서 가의 후손이었지만 작달만한 키에 열등생이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세 번 옮겼는데 그 중 한 학교의 학생기록부에는 “품행이 나쁘고 신뢰성이 없는 학생이고 의욕과 야심이 없고 다른 학생과 자주 다투며 상습적으로 지각하고 물건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며 야무지지도 못하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처칠은 역사와 군사학에는 흥미를 느꼈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사관학교에 들어가서 수학을 안 해도 되자 열등생에서 우등생으로 바뀌었습니다. 군 복무를 하면서 종군기자로 쿠바, 수단 등에서 활약했으며 남아프리카에서 보어전쟁이 벌어지자 종군기자로 갔다가 포로가 됐지만 극적으로 탈출해 영웅이 됩니다.
처칠은 자유당에서 정치생활을 하다가 보수당으로 옮겨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를 이끄는 주역이 됩니다. 2차 세계대전 전 공군의 강화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가 나중에 독일군의 공습이 시작되자 수상으로 취임합니다. 그는 의회 연설에서 “피와 땀과 눈물밖에 바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처칠은 어린 시절 언어장애로 곤란을 겪었지만, 이후 수많은 연설로 영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줬습니다. 처칠은 언어장애를 이기기 위해 좋은 문장을 큰 소리로 읽고 또 읽었다고 합니다.
그는 두 번째 수상 임기를 마치고 옥스퍼드대 졸업식에 가서 연설을 하게 됩니다. 수많은 청중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엽니다. “결코, 결단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또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결코, 결단코 포기해서는 포기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고 연단을 내려옵니다. 잠시 후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펴졌지요.
처칠은 화가이자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1953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스웨덴 한림원은 ‘전기와 역사서에서 보여준 탁월함과 고양된 인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행한 훌륭한 연설을 남긴 공적’에 대해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는 유머를 즐긴 큰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처칠과 관련한 유명한 유머.
■ 예쁜 아내 Ⅰ
■ 예쁜 아내 Ⅱ
■ 루스벨트와의 만남
■ 걱정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