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이야기(CEO연구)

[CEO연구] 조직에 위기감을 불어넣는 방법

허심만통 2009. 12. 21. 22:37

 

 

글로벌 기업 A그룹의 연례 최고경영자회의에서 ‘기업의 비전과 위기 대응전략’에 대한 발표를 앞두고 있는 두 명의 최고경영자(CEO), 김 사장과 최 사장이 있다. 김 사장은 많은 근거를 제시하며 논리적으로 위기 대응 전략을 강조했다. 반면 최 사장은 준비된 연설문을 내려놓고 연단 아래로 내려왔다. 순간 조명이 최 사장만을 비췄다. 그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우리가 항상 어둠 속에 있다고 얘기하곤 했는데 저는 그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는 말을 던지고 다시 연단에 올라가 연설을 시작했다.

연설 시간의 절반 정도는 개인적인 이야기로 채워졌다. 부친이 사업에 망해 가족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 술에 취해 회사 기밀을 말해버린 경쟁사 직원 이야기, 업계 1위인 회사에 처음 출근할 때 가슴 벅찼던 기억, 회사에 대한 고객 불만을 듣고 화났던 일들, 더 나은 회사를 만들기 위한 자신의 굳은 다짐 등을 설득력 있게 늘어놓았다.

두 사람의 연설은 참가자들에게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논리에 바탕을 둔 김 사장의 연설은 임원들의 이성적 판단을 요구했다. 반면 감성에 호소한 최 사장의 연설은 조직이 직면한 문제를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생성시켰다.

특히 최 사장의 연설은 조직 구성원 사이에 깊이 스며있던 무사안일한 태도를 벗어던지게 하는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카리스마론을 창시한 프랑스의 교육가 맨프레드 켓츠 드 브리스는 “1온스의 감성이 1톤의 사실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방대한 사실적 자료를 들이대며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한 편의 짤막한 이야기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훨씬 낫다는 이야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로 100년 된 기업들마저 무너지고 있다. 위기시대,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리더십과 변화관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존 코터 하버드대 교수는 그의 저서 ‘위기감을 높여라(A Sense of urgency)’에서 “성공하는 조직을 만들려면 무사 안일주의(Complacency)를 타파하고 위기감을 고조시켜라”고 말한다.

코터 교수는 “이때 중요한 것은 조직원의 감성을 움직이는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조직에 위기가 엄습해도 궁극적으로 조직원들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행동으로 옮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터 교수는 “백 마디의 논리적 설명보다 한마디의 설득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강조한다. 생각을 뜻하는 한자 ‘사(思)’는 밭(田)과 마음(心)으로 구성된 합성어라는 것. 밭(田)은 본래 인간의 숨골, 즉 이성을 뜻하며 이를 마음(心)이 지탱하고 있다. 본래 ‘생각’이란 감성(心)의 기초 위에 이성(田)이 작동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코터 교수는 “결국 생각이 제대로 일어나게 하려면 먼저 마음이나 감성을 움직인 다음 논리를 통해 이성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음이 움직인 뒤 논리가 따라야 생각이 온전하게 완성된다는 해설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코터 교수는 ‘경험담’이 마음을 움직인다고 말한다. 위기를 극복한 다른 기업의 사례, 위기 극복 과정에서 나타났던 직원들의 구체적인 행동, 그들이 겪은 소중한 경험들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기업의 위기 극복 또는 실패 사례가 더 큰 영향을 준다.

외부 사례는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과 내부에서 보고 느끼는 것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내부 시각으로 내부를 바라보면 문제점을 찾아낼 수 없다. 이 때문에 코터 교수는 “추상적인 이론보다 구체적인 위기 사례를 제시해 조직 내 위기감을 높여 직원들의 감성을 움직이는 것이 혁신의 출발점이자, 무사안일을 타파해 위기를 뛰어넘는 위기경영의 해법”이라고 조언한다.

[최은수 매일경제 증권부 차장
eunsoo@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