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펌][문화비평]영화,시대따라 달라진 가치관 반영

허심만통 2010. 5. 18. 09:37

 

담배, 두 감독의 '하녀'가 다른 이유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오가고, 삼삼오오 둘러서서 수다를 나누고, 누군가는 음식점에서 고기를 뜯고, 그 음식 재료를 나르거나 손질하는 사람도 있는 서민들로 북적이는 상가 거리. 아주 평범한 풍경이다. 그 풍경이 그러나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나는 시점 때문이고, 또 하나는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 때문이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유흥가 고층 건물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비틀거리며 서있는 젊은 여성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사람들 속에 어우러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위태롭게 내려다보던 시선에서 시작한 카메라가 거리로 내려와 걷고, 먹고, 일하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그 사람들 무리마다 어김없이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이 껴있다. 드러내놓고 남들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성’, 여기서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와 달라져 있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서 이은심이 연기한 하녀는 원래 방직공장 여공이었다. 기숙사도 있고, 여공들을 위해 음악선생을 불러 취미생활도 장려하는 나름 괜찮은 공장에 다니던 그이는 어쩌다 남의 집 살림을 대신하는 ‘하녀’가 된 것일까? 바로 담배 때문이었다.

  

   
  몰래 담배를 피우다 경희에게 들키는 장면  

 

여공들의 음악 선생인 동식(김진규)은 애딸린 유부남인데다가 그리 대단한 음악가도 아니지만, 고향을 떠나 공장을 다니는 아가씨들에게는 나름 동경의 대상이다. 그래서 연애편지를 받기도 하고, 따로 피아노 레슨을 받겠다는 핑계로 집까지 드나들며 애정공세를 펴는 대담한 여공 경희(엄앵란)의 유혹을 받기도 한다. 여공들은 임노동자이지만 동식의 아내(주증녀)는 재봉틀이라는 자산에 자신의 노동을 보태 집안을 일구고, 남편을 음악선생 구실하게 만드느라 병약해져있다. 그래서 살림을 대신 해줄 하녀가 필요해졌다. 이 자리에 경희가 동료 여공을 끌어들이는 빌미가 ‘담배’다.  

 

   
  동식에게 경희가 레슨받는 동안 뒤에서 재봉틀질하는 동식 아내  

 

연애편지 쓴 것만 들켜도 쫓겨나는 규율 엄한 공장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동료 여공에게 흡연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서 동식의 집에 하녀로 들여보낸 것이 경희다. 같은 공장 다니는 똑같은 여공 처지에 ‘담배 태우는 것’과 ‘피아노 레슨 받는 것’의 차이가 누구는 하녀로 주인집 어린 자식들에게까지 무시 받으며 허드렛일하게 만들고, 누구는 레슨비 내가면서까지 유부남과 연애놀음 즐기며 잘난 척하게 만든다. 

 

   
   

 

그런데 2010년의 <하녀>에서는 여성의 흡연이 별 약점꺼리가 되지 못한다. 사실보다 좀 과장된 풍경이기는 하지만 여성들은 길가에서도, 일터에서도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담배를 피운다. 심지어 1960년의 부잣집과는 차원이 다르게 으리으리한 훈(이정재)네 고참 하녀 병식(윤여정)도 주인 부부 앞만 아니라면 집안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워 문다. 담배는 병식이 ‘아더메치한(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스런)’ 하녀 노릇을 버텨내게 하는 힘이자, 신참내기 하녀 은이(전도연) 앞에서 연출하는 위압적 태도에 방점을 찍는 소품이다. 한국식 문화에서 담배 연기는 자기보다 낮은 사람 앞에서 마음 놓고 내뿜을 수 있는 것이므로. 

   
   

 

담배 하나를 놓고도 이렇게 다르듯, 김기영 감독의 <하녀>와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아주 다른 영화다. 그러니까 새로운 <하녀>는 원작 <하녀>의 리메이크라기보다는 ‘하녀와 주인집 남자의 부적절한 성관계로부터 비롯된 파국’이라는 설정을 빌어 달라진 시대에 달라진 가치관을 그리는 영화다. 임상수 감독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로부터 모티브를 가져와서는 자신의 전작 <바람난 가족>(2003년)의 개정증보판을 만들어냈다.

 

   
   

 

김기영의 하녀는 욕망하는 존재다. ‘사랑’이 아니라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부엌에 숨어든 쥐새끼든, 주인집 자식새끼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여 버릴 수 있는 존재다. 성과 임신을 무기삼아 고용주인 본처에게 자기 밥 수발을 들게 만들고, 하녀라는 자리에서 순식간에 아내의 자리를 넘볼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자신이 권력을 휘두르면서부터는 당당하게 동식에게 담배를 요구하고 심지어 ‘여보’라고 부른다. 

   
  동식 아내를 위협하는 하녀  

 

그런데 임상수의 하녀 은이는 도무지 아무런 욕망을 내비치지 않는다. 욕망은 결핍으로부터 비롯되고, 결핍감은 질투나 부러움, 자괴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런 감정에 휘둘려 행동하다보면 죄의식을 느끼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런데 자기 소유아파트도 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아직 쓸 만한’ 육체를 지니고 있으며, 누군가 투신자살했다고 소동이 벌어져도 구경거리로 여기는 게 ‘뭐 어때?’라고 생각하다가, 불현듯 다니던 식당일을 그만두고 남의 집 입주가정부로 들어가는 은이는 욕망하는 대신 ‘사랑’을 한다.

 

   
   

 

그래서 은이는 위험하다. 부리는 자와 부림 받는 자의 계급 차이 따위 가볍게 무시하고 너무도 순수하게 주인집 아이를 예뻐하고, 주인 여자 해라(서우)를 시중들고, 주인 남자가 자신의 방에 찾아들 때 기꺼이 성관계를 맺는다. 자신이 좋아서 하면 그뿐,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닌 은이의 사랑은 주인과 하녀라는 관계를 흔드는 것이다. 그런 사랑은 오직 동등하거나 우월한 존재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려고 하는 은이는 자본을 바탕으로 계급적 질서를 지배해 온 이들에게는 도저히 내버려둘 수 없는 위협이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훈의 근사한 모습에 행복해하고, 그 근사한 남자와의 성적 쾌락을 능동적으로 즐길 줄 알며, 그 쾌락의 대가로 내미는 수표 앞에서는 오히려 심드렁한 은이는 지배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은이는 훈과의 섹스로 예기치 못한 임신을 했어도, 뱃속 아이를 내세워 뭔가를 요구하려 하지 않는다. 금전적 보상도, 지속적 관계도 기대하지 않는다. 낙태하라며 내미는 수표를 거절하고 보약 쪽쪽 빨아먹으며 행복해하는 은이가 바라는 것은 주인집 아이처럼 예쁜 딸을 낳는 것이다. 자기네같이 아이 키우는 걸 걱정할 필요가 없는 신분의 사람들이나 넷째고, 다섯째고 계속 낳는 거라고 생각하는 해라에게 은이 뱃속의 아이는 자신이 누려온 질서의 전복이다.

 

   
   

 

감히 장모에게 “이봐요, 당신 딸이 낳아야만 내 애인 것 같습니까?”라는 훈에게는 본처가 되었든 하룻밤 쾌락의 결과가 되었든 그 무엇도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수 없다는 자신이 있다. 이미 대를 이어 견고한 계급 사회를 만들고 지배해 온 최고 권력자 훈에게 해라는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도 이혼이나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해라는 훈의 권력과 재산을 계속해서 누리는 쪽을 택한다.

 

<바람난 가족>에서 껄렁한 이웃집 스토커 고등학생 지운(봉태규)과의 관계로 임신한 호정(문소리)이 훈의 현실적 버전인 영작(황정민)을 떠나 기운차게 새 인생을 찾은 것과는 달리 은이에게는 주체가 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 호정은 <하녀>에서 의사가 되어 은이에게 ‘어찌 되었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격려하지만, 계급이 다른 은이에게는 그 축복을 누릴 권리가 허용되지 않는다. 

   
   

 

김기영의 하녀는 자신에게 결핍을 느끼게 한 동식의 가정 자체를 송두리째 파국으로 이끌었지만, 임상수의 하녀 은이는 자기 혼자만 소멸된다. 그것도 스스로. 훈을 둘러싼 세상에서 은이는 그저 얼룩이었을 뿐이다. 김기영의 <하녀>는 에필로그에서 영화 속 비극을 상상에서 비롯한 판타지로 눙쳐버리지만, 임상수의 에필로그는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바람난 가족’도 해체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노라고 못을 박는다. 심지어 그들의 지배는 집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 바깥세상에까지 두루 미친다며 축배를 든다.

 

오직 아들을 잘난 ‘검사’로 만든 병식만이 그토록 견고한 하녀 근성과 계급의 벽에서 빠져 나갈 수 있다. 그러고보니 스폰서 검사들 뒷소식은 어떻게 된 걸까 궁금해진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 추접스런 성접대 소동을 겪고도 그들의 권력과 지위와 가정은 여전히 안녕하신 걸까?

 

- 이안 (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