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그 동안 해 왔던 일이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막상 우리가 예상했던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으니 조바심이 난다.
그런데 지인 중 하나가 경제적인 손실을 입고 절망해서 성급한 결정을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 사람... 내가 자주 나를 보라고 이야기를 했던 사람인데...
난 천성이 그런지 게을러서 절망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안 좋은 일이 한꺼번에 몰려들 때가 있다.
그 때는 가가운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게되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기둥이 쓰러져버린다.
경제적으로 파탄되고 희망이란 것은 그저 백수의 백일몽처럼 매일 생겼다 사라지는
생각의 사치가 되고 만다.
가족의 얼굴을 보는 것이 더 괴롭고, 무엇이든 해야겠다 싶어
혼자 빈 사무실에 앉아보지만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무심히 시간을 보내고 새벽에 집에 들어가서 이방 저방 기웃거려본다.
잠자는 아이들의 얼굴과 피곤해 보이는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눈물도 쏟아보지만
그것이 절망에서 오는 감정은 아닌 것이다.
절망도 교만이라는 말이 참 와닿는다.
영어의 Pride가 교과서에는 자존심으로 적혀있는데 성경에는 교만이라고 적혀있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덕분에 지금은 얼치기 잡사가 되어있다.
Pride에는 Confidence나 Faith가 없다. 그래서 보여지는 것에 쉽게 가치를 부여하고
자신을 가치있는 것 처럼 보여지려고 노력하고, 보여지는 것으로 대접하고 대접받으려
노력한다. 프라이드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불러와 자신의 눈을 멀게하는 마력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떤 문제든지 자신이 다 해결하고 궁극에는 잘될 것이라는 가짜 신념을 만들어 준다.
그래서 프라이드는 교만이다.
그런데 이런 Pride도 아니고 절망이 왠 교만이란말인가?
내가 기독교적 구복신앙을 반박할 때 자주 인용하는 성결구절이 있다.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창세기 2장 27-28절 -
성경의 창세기 2장의 27장에서 30장을 읽어보면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
그들에게 준 축복과 사명이 적혀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으므로 그의 능력도 담게하시고
그가 하시는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일 중 인간의 영역에서 다스릴 수 있는 대상을
일러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지상 명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는 것이다.
생육, 번성, 충만 이 세 단어는 우리가 우리 삶을 어떻게 꾸려야하는 지를 보여준다.
먼저 스스로 살아야하며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육신의 수고로 인함이 아니라
적어도 번성하기 위해서는 창조주께서 주신 지적인 능력을 사용해야하며
그로 인해 무질서한 양적 팽창이 아닌 인간됨으로서의 번성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충만한다함은 그저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안으로 충만함이 없이 밖으로만 충만한다고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안이 비어 있는데 밖으로 충만하면 그것은 바로 공허이다.
내면의 충만은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소위 말하는 Feel을 받아야하는데 그것은 단순한 감상적인 수준을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영적인 갈망이 있고 그것을 충족하지 못하면 인간은 그저 생각하는 고깃덩이에
불과해진다. 영적인 체험들은 어느 한 순간에 주어지기보다는 자신과 세상을 향한 끊임없는 사색과
대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 무척 중요해진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우선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생각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나의 삶 속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된다.
그리고 영적 충만은 하나님 , 즉 나의 근원과의 교감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것이 기독교적인 신관의 핵심이다.
여하튼 창조주는 우리에게 이미 복을 다 주셨고 그것을 사용하라고 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에 익수치 못해 인생의 실수를 실패로 받아들여 곧잘 절망한다.
절망한 우리들은 우리의 생육을 의심하고 번성을 의심하고 충만을 피해다닌다.
우리는 항상 미래의 어느 순간에 교과서에 적힌대로 할 것이라는 의지를 키우고 산다.
하나님에게 현재 과거 미래가 하나 이듯 우리에게도 현재,과거, 미래가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현재를 살 뿐이다.
현재를 풍요롭게하는 것이 미래를 살찌우고 과거를 의미있게하는 방법임에도
우리는 현재를 포기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그런 미래 지향적인(현재 부정적인) 태도는 바로 절망을 가져다 준다.
미래의 희망이 나쁜것이 아니라 현재를 부정하는 것이 나쁜 것이다.
절망은 미래의 환상 때문에 갖게 되는 업보이고,
미래의 환상은 바로 현재를 부정하는 교만에서 비롯된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여라.
그리고 그 모습을 부정하지 말고 사랑하라.
그러면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가 분명해진다.
미래 역시 또다른 오늘이다.
오늘을 땀을 흘리며 온힘을 다해 사랑하며 살아 가라.
힘들고 어려울 때 하늘의 별을 바라보라.
지치고 괴로울 때 가족의 얼굴을 바라보라.
하늘의 별이 작아보이는 것은 멀리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당신 눈앞에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이 살고 있는 지구라는 어마어마한 땅덩어리인 것이다.
가족의 얼굴이 당신의 눈에서 사라지는 것은
그들을 가까이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까이 서서 바라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차라리 마음에 담고 보라.
무엇이 느껴지는가?
그것이 바로 당신의 삶의 이유이고 행복이고 희망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는가?
(내가 지인에게 이 말을 해주었다면 다른 결정을 내렸을까?
이것이 다른 관점에서는 교만이 될지언정, 이 말을 해줄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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