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바다 삼면을 따라 해안도로를 걸었다. 그리고 <아내와 걸었다>는 책을 냈다. 모두 65일간 다섯 차례로 나눠 갔는데, 아내하고는 3차까지 같이 걸었고 4차와 5차는 혼자 걸었다. 책이 나오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어떻게 그런 여행을 했느냐?”는 것. 직장에 매이고 집안 대소사에 묶이면 여행 떠나기 쉽지 않은데, 뭔가 특별한 동기나 계기가 있었던 것 아니냐, 그런 물음이었다. 고난의 순례도, 한계에 대한 도전도, 인간 승리도 아닌 내 여행에 대해, 그냥 놀듯이 아내와 둘이 다녀온 여행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늘 망설이곤 했다.
아마 누구나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떠날 수 없는 이유를 떠올리면 101가지쯤 나타날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잡념들에 치였는데 이러다간 끝이 없겠다 싶어서 생각을 바꿨다. 꼭 여행을 떠나야 하는 한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나에게 그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아내였다. 아내는 결혼하기 전 내게 이렇게 말했다. “결혼하면 너랑 나랑 오랜 시간 그냥 함께 놀면서 있어 보자.” 아내는 나더러 돈을 벌어 오라고도 하지 않았고, 명예를 떨치라고도 하지 않았다. 대신 같이 살면서 놀듯이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조금씩 계속 늘려 가자고만 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서 나는 더 바빠졌다. 아내와 얼굴 마주하고 밥 먹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때마다 아내는 경고했다. 돈 때문에 하는 일이라면 줄이거나 아예 하지 말라고. 그렇게 경고가 쌓여 가던 어느 날이었다. 아내는 혼자 절에 다녀오기 시작했고 때로는 바다 보러 훌쩍 1박2일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바보 같지만, 그때 나는 저러다가 아내가 출가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강해질수록 지금의 나를 떠나야 하겠구나, 아내가 원하는 나로 돌아가야 하겠구나, 이런 생각의 나무가 점점 무성하게 잎사귀를 피워 냈다. 그때 마침 아내가 “오늘 가자!”고 말했고 나도 “그래!”라고 말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속초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냥 걷기 시작했다. 바다를 보면서 하루하루 걸었다. “이번 생에서는 너랑 잘 사는 게 내 업이야.” 혼자 갔던 5차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아내가 나를 꼭 껴안아 주며 해 준 말이다. 나는 정말 여행 잘 다녀왔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을 가야 했던 단 하나의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되었으니까.
- 김종휘 / 문화평론가, 하자센터 기획부장 -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행동하라.
- 하마드 카타르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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