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란 상대방과의 이해와 교감을 의미한다. 간혹 소통의 문제를 홍보의 문제로
오인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소통일 수 없다. 소통은 서로 마음을 나누는 쌍방향의 것이다.
메시지 자체가 이미 공감을 이룰 만하다면, 소통의 기술이나 요령이 도대체 문제될
것이 있을까? 그런데도 소통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서로 좋아서 연애하는 청춘남녀
사이에서조차도 소통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소통의 기술 내지
요령 또한 절실할 문제임이 분명하다.
입을 막았던 그 시절에는 오히려 행간에 감춰놓은 메시지만으로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교감이 이뤄졌다.이는 상호 소통의 욕구가 맞물려 있었고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통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이뤄질 수 없다. 흔히 우리는 소통의 문제에
있어 양비론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 중에서 가장 고약한경우가 다름을 차이로 인식하고
차이를 선악으로 인식한는 것이다. 규범판단과 사실판단은 다르다. 내가 마땅히 선을
추구한다 해도, 사실의 견지에서 내가 100% 선하다는 것은 허위일 수 있다. 상대가
아무리 악하다 해도, 그들 역시 얼마간 선한 요소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선악이나 공적인 이념의 문제로 포장하는
것은 구분될 다른 문제이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평범한 선한 사람들이 선을 추구
하다 자칫 완고해지기 쉽다는 점이다.
소통의 기술이나 요령은 문화의 문제이다. 사회적으로 오랜 경험이 축적되어 구성원이 공유하는 문화인 것이다.소통의 기술이 문화의 문제라는 것은 바로 소통을 위해서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다산 연구소 김태희 실장의 글을 일부 발췌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