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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속의 지혜

부자와 어부와의 대화

 

 

어느 날, 한 높으신 양반이 해변을 걷고 있었다. 그 사람은 근사한(유명 상표의) 버뮤다

반바지를 입고, (역시 유명 상표가 부탁된) 썬 그라스를 끼고 있었으며, (눈에 딱 띄는

상표의) 모자를 쓰고, (유명 상표에 값비싼) 시계도 차고, (온통 유명 상표가 새겨진)

운동화에, 허리에는 (유명 상표의 가죽 케이스가 담긴 역시 유명 상표의) 휴대폰을

차고, (상표는 없지만 어디서 봐도 눈에 띌 정도의 화사한 색깔로)머리카락을 염색하고

있었다.

 

오후 두 시쯤 되었을 때, 그 양반은 어떤 어부가 작은 쪽배를 계류장에 묶은 뒤 행복한

얼굴로 고기가 담긴 그물을 끌어 올리는 모습을 보았다. 높으신 양반은 어부에게로 다가

갔다.

 

"에헴! 실레지만, 배를 타고 오셔서 고기를 내리는 걸 봤습니다만, 일을 끝마치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 아닌가요?"

 

어부는 남자를 흘낏 쳐다보더니, 미소 띤 얼굴로 그물을 걷으면서 대답했다.

"이르다고요? 왜 이르다는 건지요? 전 이미 제 일을 다 마쳤는걸요. 필요한 만큼 고기도

잡았고."

 

"벌써 하루 일과를 마쳤다고요? 겨우 두시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높으신

양반으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 말에 어부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 보십시오. 저는 아침 아홉 시 경에 얼어나 집사람과 아이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합니다.그리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준 뒤 열 시쯤에 배를 타고 나가 네 시간 정도 잡으면 제가 우리 가족과 먹고 살기에 충분할 만큼은 벌 수 있습니다. 뭐 여유롭지는 않지만 행복하게 살아갈 정도는 되지요.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시 낮잠을 즐기고, 집사람과 학교에 가 아이들을 데려온 뒤, 잠시 산책을 하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 정담을 나누기도 합니다. 저녁에는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지요.

 

높으신 양반이 어부에게 충고를 해주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는 듯 끼어 들었다.

"제 말씀 좀 들어 보세요. 댁은 지금 사업 면에서 볼 때 큰 실수를 하고 계신 겁니다. 지금 댁이 지불하고 있는 '기회 비용'이 너무 높다 이겁니다.거기에 놀랄 정도의 '이익까지 포기하고 있고요. 모르긴 해도 비용낭비도 꽤 많을 겁니다.당신의 '최고의 경쟁력을 발휘하기 위한 문턱'을 넘기에는 아직 멀었다 이겁니다."

 

어부는 어쩔 줄 모르는 상대방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여유 있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도무지 이 남자가 떠들어 대는 얘기가 뭔지, 도대체 왜 평생 들어본 적도 없는 소리를 내게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높으신 양반이 말했다.

"근무 시간을 좀 늘린다면, 예를 들어 오전 여덟 시부터 밤 열시까지 일한다면, 당신 배에서 훨씬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어부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되물었다.

"뭣 하러요?"

 

"아니 뭣 하러라니요? 최소한 물고기를 세 배는 더 잡을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도대체 경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 없으세요? 하여간, 그렇게 세 배씩만 더 잡으면 일 년 안에 큼지막한 배 한 척을 더 사고 선장도 한 명 고용할 수 있을 거라 이겁니다........"

 

어부가 끼어들었다.

"배 한 척을 더요? 아니 왜 배가 한 척 더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선장은 또 뭣 하러요?"

 

"왜 필요하다니요? 모르겠어요? 배 두 척이 척 당 하루 열시간씩 고기를 잡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배 두 척을 더 살 수 있는 걸요? 아마 2 년 이내에 배가 네 척은 될 겁니다. 하루 어획량도 눈에 띄게 늘어날 거고, 그걸 팔면 날마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요."

 

어부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왜 있냐 이겁니다."


"원 참! 아니, 완전히 꽉 막히셨네요! 그렇게 한 이십 년만 벌어보세요. 해마다 번 돈을 재투자하고요. 그럼 아마도 배 팔십 척정도는 거느린 거대한 선단의 소유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요.다시 말씀드려요? 배 팔십 척이요! 그것도 댁이 가진 배보다 열 배는 큰 것으로 말입니다!"

 

어부가 다시 한 번 너털웃음으로 터뜨리며 물었다.

"그건 그런데, 내가 그런 걸 가져야 할 이유가 뭐냐 이 말입니다."


높으신 양반은 상대방의 그 질문에 기가 막힌 듯, 온 몸을 다 흔들어가며 대답했다.

"당신이 얼마나 경영 마인드가 없는지, 경영 전략 같은 것도 얼마나 갖고 있지 못한지 한 번 좀 보세요! 그 정도 선단의 소유주가 되면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질 수 있는지, 경제적으로 얼마나 안정될 수 있는지 모르겠단 말씀입니까? 그렇게만 돼 보세요. 아침마다 아홉 시쯤 느긋하게 일어나서, 아내와 아이들과 아침식사를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줄 수도 있고, 열 시쯤 즐거운 마음으로 고기를 좀 잡다가, 두시쯤이면 벌써 일을 접고 집으로 돌아와 낮잠을 즐길 수 있을 거다 이겁니다."

 

 

(에리히 프롬은 온갖 것을 다 갖고 있으면서도 늘 욕구불만인 사람들을 일컬어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되 자기 자신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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