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꿈 이야기(Dream On)

꿈이 사업을 만들고 산업을 일군다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는 1903년 12월 17일 오전 10시 35분에 드디어 실현되었다. 비록 1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300여 미터를 나는데 불과 했지만 말이다. 라이트 형제가 자신들이 만든 비행기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키티호크 해안에서 성공적으로 하늘을 날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13년 후인 1916년 윌리엄 보잉(William Boeing)은 ‘Pacific Aero Products Company’ 회사를 미국 서북부 워싱턴주의 퓨젯 사운드(Puget Sound)에 설립하였다. 설립한 지 1년 후에 회사 이름을 바꾸었는데 새 이름이 자신의 이름을 딴 보잉 에어라인(Boeing Airline)이었다. 이 회사는 설립 초기에 주문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 윌리엄 보잉 자신의 사재로 겨우 운영되었다. 하지만 당시 유럽에서 벌어지던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1917년 본격 참전하게 되면서 보잉사의 상황은 갑자기 호전된다.

전투용 항공기를 필요로 했던 미국 정부는 당시 보잉사가 모델 C수상비행기라는 전투용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50대를 주문하게 된다. 이 주문 한 건으로 인하여 직원수가 28명에 불과하던 보잉은 1년 만에 직원이 377명으로 급증한다.

보잉사는 제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대형 여객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축적하면서 큰 성장을 하게 된다. 2차대전 이후 민간 여객기의 수요가 증가하게 되어 민간항공기 분야와 군용항공기 분야에서 성장을 하게 되었고,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우주개발 산업인 ‘아폴로(Apollo)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우주산업부분에까지 손을 뻗치게 된다.

나중에 유럽의 에어버스(Airbus)가 보잉을 위협하기 이전에는 보잉사의 민항기는 세계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었다. 보잉의 독주에 날개를 달아준 모델이 바로 B747기다. 1969년 첫 취항한 이래,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하여 30년이 넘도록 중대형 점보기 시장을 장악한 효자 모델이다. 더구나 1990년대 후반 들어 보잉의 경쟁사였던 맥도널 더글라스(McDonnell Douglas)는 주력 항공기 기종인 DC10이 연속적으로 추락함에 따라 1997년에 보잉사에 인수? 품? 만다. 이외에도 보잉은 우주방위사업체인 락웰(Rockwell International)과 휴즈(Hughes Space & Communications)도 인수하여 보잉은 상업용, 군사용, 우주항공용 비행기를 아우른 미국을 대표하는 거대 항공사로 위상이 더욱 높아진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 와서 보잉은 유럽의 에어버스에게 점차 밀리게 된다. 에어버스사는 세계 항공기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의 보잉을 견제하기 위해 유럽의 4개 나라(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가 주도하여 컨소시엄 형태로 1970년에 설립한 회사이다. 실질적으로 에어버스의 발전을 이끈 것은 A300 같은 중대형 점보기가 아니라 중단거리용으로 개발된 A320이었다. 에어버스는 A320의 인기와 더불어 매출이 급증하였고, 장거리용으로 A330, A340, A350, A380 등을 시장에 내 놓으면서 명실상부한 세계 2위의 민항기 업체로서의 입지를 다져 나가기 시작했다.

21세기 들어서 에어버스가 A380를 개발하는 동안, 보잉은 시장의 패권을 다시 찾아오기 위한 신 기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은 B7E7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B787로 명명된 드림라이너(Dreamliner)이다. 이 기종은 대형 점보기 시장이 아니라 그보다 약간 작은 중형기 시장을 노리기 위한 모델이다. 보잉사는 미래의 항공기 시장에서 대형 허브 공항을 통해 비행기를 갈아타는 형태보다 한번에 도착하기를 원하는 고객의 니즈(point-to-point)에 의해 장거리이면서도 점보기보다 작은 규모의 항공기가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드림라이너는 탄소복합소재와 티타늄 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기존 동급 여객기보다 훨씬 가볍고 연료 효율성이 20%이상 개선되었다. 하지만 드림라이너는 우여곡절을 거쳐 2010년 4분기부터 선보일 예정이다.

2008년 미국 경기 침체에 따라 보잉사 매출이 10%나 줄어들었는데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보잉사는 ‘협업을 통한 생산성 혁명 2.0’을 도입했다. 여러 부품을 조립해 비행기를 만드는 보잉사 입장에서는 외부에 많이 포진해 있는 부품업체들과의 긴밀한 협업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생산성 혁명 2.0’이란 전통적으로 대기업들이 추구하던 일률적인 원가 절감 방식에서 벗어나 협업과 소통 같은 소프트웨어적 경영을 추구하는 기업 경영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보잉사는 칸막이를 제거하고 이동식 라인을 도입하여 유기적 생산라인을 형성한 결과 최종 공정 시간과 재고가 모두 혁신적으로 줄어들었다. 그 결과 보잉사의 이익은 크게 늘어났다.

보잉은 2009년 매출이 682억 달러로 이 분야 1위 기업이고, 에어버스의 지주회사인 EADS 그룹(AIRBUS, Airbus Commercial, Airbus Military, EUROCOPTER, ASTRIUM 등을 운영하는 모기업)의 매출은 보잉에 이어 428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이 1,2위 기업에 이어 중형항공기 제조 회사인 캐나다의 봉바르디에, 브라질의 엠브라에르가 뒤따르고 있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대표되는 기후변화 이슈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은 가장 중요한 이슈다. 식품 산업을 제외하고 수송 산업이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데, 수송수단 중에서 일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높은 수단이 바로 항공기다. 다행히 보잉은 환경경영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환경경영 성과로 보잉은 2002년부터 2009년가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1% 감소했으며, 에너지 소비량은 32%, 유해폐기물량은 38% 감소했다. 또 2010년부터 5년간 지구온난화가스, 탄소 배출량,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5% 감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보잉사가 앞으로 기후변화 대응에서 더욱 선도적 리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글 :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이사 겸 이마스(emars.co.kr) 대표운영자)

* 이 글은 한국가스공사 사보에 김민주 대표가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