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하나의 꽃이다(世界一花) |
이와는 달리 한국의 국토를 놓고 적극적으로 해석했던 사람으로는 김교신(金敎臣)과 함석헌(咸錫憲)이 있다. 김교신은 “겁자에게는 안전한 곳이 없고, 용자에겐 불안한 땅이 없다. 조선 역사에 영일(寧日)이 없었다 함은 무엇보다도 이 반도가 동양정국의 중심인 것을 여실히 증거하는 것이다. 물러나 은퇴하기엔 불안한 곳이나 나아가 활약하기엔 이만한 데가 없다”하였고, 함석헌은 “이 위치는 다이나마이트 같이 능동적인 힘을 가지는 자가 서면 뒤흔드는 중심이요, 호령하는 사령탑이요, 다스리는 서울일 수가 있다”고 하였다. 과연 한반도는 대륙으로도, 해양으로도 무한히 뻗쳐 나갈 수 있는 지정학적, 지경학적(地經學的)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한반도는 숙명적인 비운의 땅이 아니라 천혜의 행운을 안고 있는 땅이다. 세계 10위권 안팎이라는 경제적 성취도 대륙으로의 통로가 막힌 반도의 반쪽, 대한민국이 해양으로서의 진취를 통해 이루어낸 것이다. 위공 정수일(爲公 鄭守一)을 알기까지 나는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조용한 아침의 나라’요 ‘은자(隱者)의 나라’인 줄 알았다. 우리나라를 고고한 은둔국으로 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해 보였고, 나에게는 그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우리나라야 말로 세계와 교류하고 세계를 호흡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나라는 그 입지 자체가 이미 세계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왜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역사를 봐도 우리나라는 외국과의 문명적 교류가 활발했을 때 국운이 융성했고, 교류의 문을 닫아걸었을 때 쇠퇴하거나 침잠했다. 문명교류를 역설하는 정수일은 어떻게 보면 그 학문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 자체가 문명교류의 집적이라 할 만하고, 그를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남쪽에 정착하게 한 것도 문명교류학을 이 땅에서 창발(創發)케 하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 아닌가 싶다. 그는 감옥에서 말 그대로 한증탕 같은 여름철, 더덕더덕 땀띠 돋아난 엉덩이를 마룻바닥에 붙이고 하루 열댓시간씩 뭉개면서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우리말로 옮겼다. 이후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한 문명교류와 관련한 노작들을 이 불모의 땅에 내놓았다.
글쓴이 / 김정남 · 언론인 ·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 저서 :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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