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의미로는 당신이 바로 당신 자신의 신이었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섬겼고,
스스로를 경배해 왔으며,
당신 자신의 목표와 흥미를 만족시키며 살아왔습니다."
배달된 들을 읽다가 따온 글이다.
우선 이 글에는 두가지 생각이 표현되고 암시되어 있다.
표현된 것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한다는 생각이고
암시된것은 자신의 운명에는 창조주의 목적과 계획이 있다는 생각이다.
어느 것이 진리인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한 쪽을 선택하고 믿음의 수준에서 거론될 뿐이다.
이것은 유신론과 무신론의 충돌인 동시에
사람으로서 삶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하는 가에 대한 논란의 중심이기도 하다.
인생을 신의 섭리로 보는 것은 종교적인 사고의 공통 분모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의 섭리가 자신이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험 때문에
우리 스스로의 판단에 따르고 또 자신의 신념을 믿는다.그리고 그 책임도 자신이 진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이 어디 자신의 의지만으로만 이끌어지는가?
이런 경험 때문에 많은 무신론자들이 신이 아닌 운명을 이야기 한다.
즉 '운'이라는 우연적인 요소의 개입을 통해
인간 스스로 가진 의지와 계획과 실천이라는 확실성의 요소가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운과 우연은 누구의 소관인가?
그저 그러한 것으로 보면 누구의 소관도 아니다.
진정 무신론자들에게는 팔자소관일 뿐이다.
그 팔자도 인간이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그들이 무신론자들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들이 무엇을 소관하듯이 자신도 무엇의 소관에 포홤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절대 우연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종교인이거나 신앙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리인가?
진리는 신이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는 신이 있든 없든 그것인 인간과 관련되어 있으며
신도 신의 방법으로 인간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인간도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즉 진리는 그것이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인가에 저울을 잣대를 걸쳐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따온 글에서 몇가지 의문을 제기해본다.
Q1. 내가 나에게 신이라면? 나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내가 나에게 신이 아님은 누구나 안다.내가 남에게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신이라면?' 이라는
질문에 여러가지 답변이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신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거나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많은 차이를 보일 것이다)
Q2. 내가 나를 섬겼다면? 왜 나는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지 못했는가?
( 스스로를 섬길 정도의 정성이라면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결정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것으로도 모자라는 무엇이 있지 않는가?)
Q3. 내가 나를 경배한다면? 왜 나는 나를 철저히 믿지 못하고 있는가?
왜 스스로 불만족인 나를 만들고 있는가?
Q4. 내 자신의 목표와 흥미를 만족시키며 살아온 것이 잘못인가?
"내 자신의 목표"가 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야하며
" 나의 흥미"가 왜 죄책감의 뉘앙스를 가져야만 하는가?
( 기독교의 자유의지는 신과의 관계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자유의지라고 설교한다.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라는 것은 하고... 그것은 철학적 사유로는 자유 의지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 의지란 것이 진정 자유로운 것인가?' 라는 관점에서
생각 해보면 그렇지 않다라는 답을 쉽게 내릴 수 있다.
가장 간단한 예가 역사적 구속아닌가? 본능을 누르는 의지는 교육을 통해 계승되는 것이므로
계승된 의지가 진정 자유로운가라는 철학적인 물음에 대한 답은 '아니다'일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되고 만다.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자유의지는 그 용도대로 사용되어야 하며
역사적으로 계승된 자유의지라면 그 용도대로 쓰여야한다.
기독교는 자유 의지가 잘못 사용된 사례로 에덴 동산 선악과 사건을 든다.
사탄의 꼬임에 넘어간 것은 신의 계율을 범한 것이지 자유 의지가 잘못된 것이 아니며
사탄의 사기에 피해를 당하게 끔 만들어 놓은 결함을 자유 의지를 부여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논리적으로는 모순이다. 왜 무결점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그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이런 결점 투성이인 모습으로 만드셨는가? 신의 실수인가?
기독교인들은 이런 표현의 의문조차 불경하다고 여긴다.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지능과 환경을 마련하신 분도 하나님인데...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게 하시는 이유도 있을 것인데...
그러나 신앙심이 깊다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사탄의 역사로 치부한다.
진리에 대한 고민은 "예수님이 진리다!"를 받아들이는 순간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 분이 스스로 진리요 생명이라 하신 '나'는 누구일까? 라는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의 선택도 이처럼 어렵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인간인데...
그들 스스로 만든 인생의 문제는 대부분 단순하고 뻔한 것들이니 참 아이러니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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