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과 경악과 공포를 느낀다. 아무 상관없는 집사람까지…이명박 정권은 가정파괴범인가.”
17일 오후 국회 민주노동당 회의실에서 기자들과 만난 엄아무개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현재 심경을 밝혔다. 엄씨는 민주노동당이 공개한 국군기무사령부 민간인 사찰 의혹 동영상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엄씨는 이날 민주노동당 최석희 비상경제상황실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기무사 민간인 사찰의 실태를 설명했다.
민주노동당이 공개한 동영상에는 약사인 엄씨 부인이 출근하는 장면과 자영업자인 엄씨가 작업장 부근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 등이 기록돼 있다. 엄씨는 자신이 군 보안기관의 사찰 대상이 됐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민주노동당과 기자회견을 약속했던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평정심을 유지했지만, 막상 기자회견이 열리고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기자들은 엄씨에게 “군과 관련된 문제가 있느냐” “최근 군인(휴가 장병 포함)을 만난 일이 있느냐” 등 기무사가 그의 동선을 파악해 주변 인물까지 사찰한 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다.
엄씨는 “나는 군대도 질병 때문에 면제됐다. 나는 군인을 싫어한다. 군인을 만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엄씨는 누군가 자기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예민한 성격 때문에 병원에서 신경과 치료까지 받았다는 엄씨는 실제로 자신이 기무사 사찰 대상이 됐다는 점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 민주노동당은 17일 오후 국회에서 국군기무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입증하는 2차 동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 ||
총선 이후 당원 신분은 유지하고 있지만, 별다른 당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엄씨는 신재생 그린에너지를 공부하면서 논문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에 이번 일이 발생했다. 민주노동당은 동영상에 나온 인물을 확인해본 결과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다면서 군과 무관한 민간인들을 사찰해온 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다.
민주노동당이 공개한 동영상 화면과 사진 등을 보면 민주노동당 금천구 사무실과 금천구 지역위원회 간부의 자택, 최석희 민주노동당 비상경제상황실장의 아파트 등이 담겨 있다.
기무사 동영상 주인공 중 하나인 최석희 상황실장은 “(국가보안법 혐의를 받는 장병의 휴가 상황을 촬영했다는) 기무사 해명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자료를 보면) 저와 40대 중반의 노조활동가 등 군과 무관한 인물들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동영상에 담김) 오고 간 대화 내용을 보면 ‘사찰조’가 운영됐다고 보고 있다. 더 많은 당원과 당직자 등의 광범위한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면서 “기무사는 청와대 직보체계로 전환했는데 청와대도 민간인 사찰을 인지했는지 해명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은 동영상에 나온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어 새로운 내용이 담긴 3차 동영상을 조만간 공개하기로 했다. 민간인 사찰이 담긴 2차 동영상이 공개됨에 따라 기무사 행동의 적법성을 둘러싼 논란은 다시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 함께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군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이 민주노동당 주장처럼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면 지난 1990년 윤석양 이병의 폭로로 드러난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파문에 버금가는 사건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당시 윤 이병은 보안사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포함해 1300명의 정치 노동 종교 재야 인사의 동향 파악을 했다는 의혹을 입증하는 개인사찰카드를 공개했고, 비판 여론이 쏟아지면서 보안사는 현재의 기무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기무사는 이번 사안은 적법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손종기 기무사 공보관(대령)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국방부를 통해 밝힌 것에 변함이 없다. (동영상은) 정당한 수사절차에 의해 입수한 자료”라면서 “(17일 민주노동당 기자회견 내용은) 파악했다. 민주노동당 주장에 대해 현재로서는 새롭게 입장을 밝힐 계획이 없다”고 설명했다
류정민 기자 (dongac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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