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사태 1년…틀 바뀐 자본주의 |
美→아시아 수출→내수 자율→규제 소비→저축… |
◆ 리먼사태 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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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아웃 주자 1루인 상황에서의 더블플레이. 야구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그저 공수가 바뀔 뿐, 스코어에는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는다. 경기장을 달궜던 짜릿한 스릴과 열기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경제에서 `원 아웃 주자 1루에 더블플레이`는 없다. 위기는 필연적으로 경제주체들의 반응을 낳고, 그런 반응들이 경제지형을 바꿔놓는다. 1년 전 파산한 리먼브러더스는 그렇게 세상을 변화시켰다. 지금 세계경제의 초점은 수출보다는 내수에, 과소비보다는 적정소비에, 시장자율보다는 정부규제에, 감세보다는 세수확보에, 소비보다는 저축에, 미국ㆍ유럽보다는 아시아에 맞춰지고 있다. 지난 15년간 풍미했던 `공급중시 경제학` 대신 `수요중시 경제학`이 득세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한 헤지펀드는 최근 국채 비중을 대폭 늘렸다. 이 헤지펀드가 운용하는 전체 자산 규모는 약 150억달러. 이 가운데 48%를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로 채웠다. 아직도 경기회복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서다. 마이클 라니에리 국제금융센터 뉴욕사무소장은 "월가에서는 경기 바닥론이 대세를 얻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냉랭한 분위기는 부동산시장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다른 지역보다 양호하다는 맨해튼의 사무실 공실률은 최근 13%대다. 지난 2007년 호황 때 6%대보다 두 배 이상이다. 투자자문사나 헤지펀드들이 사라지고 결국 금융인들이 월가를 떠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지난 1년 동안 월가를 떠난 금융산업 종사자는 1만9200명. 뉴욕주 공식 집계다. 비공식 집계를 합치면 훨씬 늘어난다. 파생상품 중심지인 시카고도 마찬가지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건물에 근무하는 파생상품 트레이더인 래리 드러커 씨는 "동료 중 절반이 지난 1년 동안 일자리를 잃었다"며 "여전히 다른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옛 동료들이 많다"고 전했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주도권과 중심지까지 바꿔놓았다. 지난 8일 워싱턴 DC 17번가에 위치한 미국기업연구소(AEI) 건물 12층 회의실. 오전 9시 30분부터 금융위기와 사베인스-옥슬리법(Sarbanes-Oxley)에 관한 세미나가 열린 장소다. 족히 100명은 넘게 들어갈 수 있는 이 회의실은 오전 9시가 되자 이미 꽉 찼다. 이 시간 이후 회의실로 들어선 사람들은 모두 서서 세미나를 들어야 했다. 리먼사태가 터지기 전인 1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주제의 세미나는 거의 뉴욕의 몫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주요 금융 관련 회의는 대부분 워싱턴에서 열리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금융의 주역을 민간금융회사에서 정부로 이동시켰고, 그 여파로 국제 금융중심지 역시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옮겨간 것이다.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금 세계는 혼돈에 빠져 있다. `우리가 겪은 것이 정말 위기였을까` 하는 의구심이 팽배하다. 주요국의 주가를 비롯한 주요 금융지표들은 이미 위기 전 수준을 회복했다. 공격적인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 확대, 적극적인 재정 지출이 만들어낸 `성과`다.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경제가 회복되면서 주식과 부동산에 돈이 몰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미흡한 금융ㆍ기업 구조조정 △글로벌 리밸런싱에 따른 충격 완화 △소득ㆍ소비 양극화 △출구전략 후유증 등 글로벌 금융위기가 남겨놓은 과제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 의심스런 상황이다. 지난 12일 중국 베이징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왕징의 한 부동산업체. 사무실 앞 유리창과 벽면에 매물로 나온 아파트 물건들의 위치ㆍ가격 등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1년 전 매매조건에 비하면 가격이 20% 안팎 뛰었다. 월세도 1년 전에 비해 10~20% 올랐다. 중국 은행권 대출이 월별로 1조위안 이상 크게 늘어나면서 상반기에만 7조3700억위안에 달할 정도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린 덕이다. 지난해 금융위기 폭발 직후 완전히 얼어붙었던 부동산 거래도 많이 살아났다. 부동산값이 금융위기 이전 고점보다도 높게 치솟은 곳도 없지 않다. 베이징 차오양구 동4환에 자리 잡은 시푸후이 아파트는 ㎡당 2만위안을 호가한다. 금융위기 직전 최고가를 찍었던 6월 1만9000위안이었던 것보다도 높은 셈이다. 속도가 다를 뿐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월가도 마찬가지다. 이미 위기는 서서히 잊히고 있다. 특히 투자은행(IB)들은 과거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정부 구제금융을 받은 IB들은 구제금융 자금 조기 상환에 나섰다. 정부 규제를 벗어나고 싶어서다. 찍어낸 달러가 풀리면서 경제에 온기가 찾아오자 주식시장에서도 숨어 있던 탐욕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워싱턴 = 장광익 특파원 / 뉴욕ㆍ시카고 = 김명수 특파원 / 베이징 = 장종회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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