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실패는 찾아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실패로 좌절하고 말지만, 어떤 사람은 그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새로운 기회를 움켜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성공이란 사다리의 최상단에 오른 기업들조차 언젠가 실패를 맛보기 마련이다. 그리고 때로는 회생 불가능한 나락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실패를 맛본 기업들이라고 꼭 좌절하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기업들은 약간의 독(毒)은 약(藥)이 된다는 격언을 몸소 실천한다. 실패라는 독을 오히려 지렛대로 활용해 체질을 개선하는 약으로 쓰는 것이다.
이처럼 실패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기업의 생사(生死)를 가르는 양날의 칼과 같다. 그렇다면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마법의 연금술은 무엇인가? Weekly BIZ는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기업의 실패를 연구해 온 두 석학을 만났다. 잭디시 세스(Sheth·71) 미국 에모리대 교수와 하타무라 요타로(畑村洋太郞·68)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이다.
먼저 세스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저서 〈배드해빗(Bad Habit·성공한 기업의 7가지 자기파괴 습관·2007)〉에서 좋은 기업이 병들어 가는 원인은 기업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고 역설한다. "기업이 탁월한 성과를 내면서 성장해 가면, 그 결과로 기업의 근본을 갉아먹는 자기 파괴 습관이 무의식 중에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파괴 습관을 7가지로 정리했다.
①현실 부정
②오만
③타성
④핵심역량에 대한 과도한 의존
⑤눈 앞의 경쟁만 보는 근시안
⑥규모에 대한 집착
⑦구성원들의 영역(silo) 의식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반문한다. "왜 당신은 자기 파괴 습관이 종말을 몰고 올 때까지 기다리나? 왜 당신은 폐암이 번질 때까지 담배를 끊지 않고 있었나?"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에서 만난 이 인도 출신의 노교수는 "7가지 자기 파괴 습관 중 가장 심각한 요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심각한 것은 물론 오만"이라고 답했다.
"1970년대 후반 미국 기술자들은 세계 최고의 기술이 모두 미국에 있다는 환상에 젖어 있었어요. MIT와 캘리포니아 주립대, 어바나 샴페인, 조지아텍…. 그리고 노벨상을 받은 수많은 교수들을 자랑했죠. 누구도 미국의 기술을 따라올 수 없다고 굳게 믿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TV 산업, 시계 산업에서도 모두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만은 성공했던 회사가 실패하는 원인을 만들어내는 근본 원인입니다."
그는 지난 6월 파산 보호를 신청한 GM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1980년대에 GM은 자사 직원을 일본에 보내서 도요타와 기술을 교류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직원은 도요타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요타는 GM이 개발 중인 신기술에 대한 시험을 이미 모두 끝낸 상태였고, GM이 도요타와 같은 대수의 자동차를 만드는 데 두 배 이상의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러나 그가 미국에 돌아와 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GM 경영진들은 오류라며 한마디로 무시했습니다."
이번엔 하타무라 요타로 교수의 말을 들어볼 차례. 최근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초청으로 방한한 그는 "실패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성공이라는 단어는 좋아하지만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매우 괴로워하죠. 하지만 실패는 훗날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는 만큼 숨기기보다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실패를 밑거름으로 해서 노력한 결과물이 바로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실패의 권유(2000)〉와 〈나와 조직을 살리는 실패학의 법칙(2002)〉 등의 책을 썼다.
―그럼 실패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있는데 저는 이 말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되풀이하더라도 도전만 계속 하면 잘되지 않을까라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말이 그 사람을 격려하거나 위로하는 데 좋을지는 모르지만, 실패한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패의 원인과 과정을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는 실패의 어머니일 뿐입니다. 실패는 도전과 발전을 위해 그 원인을 분석하고 거기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해 낼 때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왜 성공한 기업에 오만이 나타납니까?
"특별한 성취의 경험을 한 기업일수록 오만이 생기기 쉽습니다. 우연히 탁월한 성공을 거뒀을 때,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을 때, 어느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했을 때, 다른 회사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모였을 때 오만이 일어납니다.
제로그래피(건식 복사방식)를 발명한 제록스가 대표적인 사례죠. 제로그래피는 1937년 가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체스터 칼튼(Carlton)이 개발했습니다. 칼슨이 첫 번째 건식 복사기를 개발하는 데 12년이 걸렸지만, 일단 상용화되자 제록스는 복사기 판매에서 특허 기술을 통해 1960년대 내내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습니다. 그 결과 제록스라는 조직은 서로 단단히 묶이고, 완고해지고, 외부 사람들을 적대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는 밖에서 온 아이디어(작은 복사기, 액체 토너, 간접 판매 등)건 내부에서 온 아이디어(개인용 컴퓨터 네트워크, 레이저 프린터)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맹목적으로 무시했습니다. 2000년 제록스는 5200명의 인원 감축과 6억 2500만달러의 구조조정 특별 손실을 발표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복사기가 프린터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제록스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죠."
―오만을 비롯해 7가지 자기 파괴 습관을 지적하셨는데, 다른 자기 파괴 습관들은 왜 생깁니까?
"기업이 커지면, 튼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자신만의 상상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타성에 빠지게 되죠. 특히 조직의 결정이 느려지면, 타성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합니다. GM은 한때 자동차 콘셉트를 만들고 시장에 출시하기까지 60개월이 걸렸습니다. 혼다와 도요타는 36개월이 걸렸는데 말이죠. 또 만장일치를 중시하고, 위원회를 좋아하는 조직 문화도 타성을 의심할만한 증상입니다.
'경영이야기(CEO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CEO연구]GE의 조직 개편 3대 원칙 (0) | 2009.10.21 |
---|---|
[ CEO연구] 우수한 협상 사례 (0) | 2009.10.21 |
[CEO연구] 뺄셈 경영- 토요코인 (0) | 2009.10.07 |
[CEO연구] '이야기'가 있는 기업 (0) | 2009.10.06 |
[CEO사례연구]더블유스코프 최원근 대표 (0) | 2009.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