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은 2007년 기업개선작업 이후 9분기 연속 흑자를 내며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다. 2009년 매출 2조2000억 원, 영업이익 1300억 원에서 2010년 매출액 3조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픔을 극복하고 새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귀감이 되어야 할 일이지만, 오히려 기업들은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기업은 “재혼해서 잘 살고 있는데, 굳이 이혼 경력을 들춰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겠느냐”며 에둘러 표현했다. 그만큼 과거의 위기는 ‘과거’일 뿐이라는 것이다.
가장 주목받는 곳은 팬택계열이다. 창업자 박병엽 부회장의 상징성 때문이다. 서른 살 때인 1991년 33㎡(10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마련한 4000만 원으로 무선호출기 회사를 설립했고 이 회사가 연평균 50% 성장을 지속해 매출액 2조 원대의 휴대전화 제조 회사로 일군 인물이기 때문이다. 박 부회장은 1980년대 이후 제조 기업을 직접 설립해 재벌 반열에 오른 유일한 인물로 ‘샐러리맨의 신화’로 추앙받기도 했다. 박 부회장은 기업개선작업 후 사재를 털어 팬택 살리기에 매달렸고 짧은 시간 내에 성공적으로 ‘기업개선작업(구 워크아웃)’을 마무리해 가고 있다.
팬택은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2005~2006년 모토로라의 레이저폰 위세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2006년 한 해에만 4000억 원의 적자를 냈다. 결국 2006년 11월 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 당시 한시법이던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의 효력이 연장되지 않아 채권단 100%의 동의를 받아야 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박 부회장은 자신의 지분을 모두 내놓기로 하고 채권단을 설득했다.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버블이 붕괴될 때도 고속 성장했고 기술력을 갖춘 팬택계열이었지만 대기업 계열도 아니고 기댈 구석이 없다 보니 채권단의 신용 축소, 채권 회수가 이어지며 부도 위기에 몰린 것이었다. 박 부회장이 발 벗고 나서 지방까지 가서 채권단을 설득한 끝에 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기촉법이 아닌 자력으로 채권단을 설득했기 때문에 팬택 측은 ‘워크아웃’이 아닌 ‘기업개선작업’으로 표현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2007년 6월 팬택과 팬택앤큐리텔은 20 대 1, 30 대 1의 감자를 실시해 박 부회장의 지분은 거의 소멸됐고 채무는 출자 전환됐다.
특히 수익성이 낮은 해외 소매시장은 철수하고 기업용 납품에 집중했다. 철저하게 선택과 집중으로 돌아섰다. 그러자 시장 상황도 점차 개선되고 히트 폰들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상황은 점차 개선됐다. 기업개선작업이 정식으로 시작된 2007년 4월 이후 2009년 3분기까지 9분기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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