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인 1992년, 서른세 살의 젊은 의사 유덕종(51)씨는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을 마친 후
아프리카 의료봉사를 위해 이 우간다로 갔습니다. 우간다 수도 캄팔라의 물라고 국립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에 사는 체온계· 혈압계는커녕 소독약 냄새조차 맡을 수 없었습니다. 1500개 침대에 에이즈와
결핵 환자만 넘쳤습니다. 하루 40~50명의 입원 환자를 봤지만 약이 없으니 죽어나가는 사람이
태반이었었습니다. 인구의 60%가 의사 한 번 만나 본 적 없이 생을 마감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우간다 도착 8개월 후에 합류한 가족의 고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2학년 큰딸이 뇌염에 걸렸을 때
혼비백산했습니다. 경련을 일으키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지만 인공호흡기를 갖춘 병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전기마저 끊긴 터라 부부는 어둠 속에서 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몇 주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어요.
이젠 정말 귀국하자, 내가 발버둥 친다고 뭐가 달라지나 싶었어요. 그런데… 떠날 수 없었습니다.
도움을 갈망하는 눈빛들을 등지고 내가 편하게 살 수 있을까 싶었어요. 딸도 '나는 아빠 덕에 나았지만,
아빠가 가면 여기 사람들은 어떡하느냐'고 하더군요." 그는 에이즈 환자를 치료하다 주삿바늘에 찔리고
결핵이 옮아 늑막염으로 한참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귀국 대신 병원다운 병원을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우간다 병원의 가장 큰 문제는 부족한 의료시설
말고도 환자 관리가 전혀 되지 않는 점이었습니다. 의사·간호사 간 협업 시스템이 전무한 상태에서 약이나
의료기기 도난도 흔했고 병원식(食)도 없어서 환자들이 굶주려 죽어나갔습니다. 독재정권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심했고 힘 있는 사람들은 이웃 나라에 가서 치료하고 오면 그만이었습니다.
2002년부터 병원을 짓고 있습니다. 의대에서 시간당 9000원짜리 강사로 일해서 번 돈도 쏟아 붓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우간다 정부가 보답한 것은 2000년 '내과 분야 최고 의사상'을 수여한 것이 전부입니다.
고국의 지원도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그는 작년부터 지인들과 함께 모금에 나섰습니다.
신축 건물은 총 5층 규모로 평당 120평 정도를 예상하고 있지만 자금부족으로 일단 3층까지만 완공하고
나머지 2층은 나중에 더 올릴 것입니다.
한국에도 우간다에도 집 한 채 갖지 못했지만 그는 말합니다.
"사는 목표가 있어 행복하다"
[조선일보 2010.01.25 기사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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