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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연초가 되면 '영어를 마스터하겠다. 책 30권을 읽겠다. 자격증을 따겠다. 운동을 하겠다. 성과를 얼마만큼 내겠다. 무엇을 배우겠다.' 등의 계획을 세우고 올해는 꼭 실천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제 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2010년, 그 결심이 아직 유효한가?
만약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곧 그 계획을 멋지게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의 결심이 오래 가지 않는다. 자기가 세운 계획들은 수첩의 한켠에서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메모일 뿐이다.
그래서 매년마다 발전 없이 같은 계획을 세우는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계획을 세우고 결심하는 이유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 지금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계획을 꾸준히 실천하고 자기가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가 있을까?
작년 10월쯤이다. 한 대기업 팀장들 6~7명을 대상으로 그룹코칭을 한 적이 있다. 그 때에 한 팀장이 코치에게 물었다. '1년 안에 10억을 벌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 분에게 코치는 딱 한 가지만 물었다. '정말로 1년 안에 10억 벌기를 원하십니까?' 어떤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줄 것으로 기대했는지, 코치의 질문에 선뜻 대답을 못했다. 코치는 다시 물었다. '정말로 1년 안에 10억을 벌고 싶습니까? 아니면 막연히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까?' '..........'
'정말로 원하십니까?' 이 질문은 자기가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추진력이며 핵심질문이다. 보통의 직장인들을 포함하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자기가 원하는 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의 희망이 자기의 희망이 되기도 하고, 가족들의 소원이 자기의 소원으로 되기도 한다. 또 주위의 소위 잘 나가는 사람처럼 되기를 바라기도 하며, 자기 역할에서의 의무와 책임감 때문에 무엇을 소망하기도 한다. 자기 스스로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찾기 보다는 외부적인 기준과 필요에 따라가는 것이다.
'정말로 원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단호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다면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렇게 되면 좋겠다.' 수준의 공상일 뿐이다. 앞에서 질문했던 1년 안에 10억을 벌고 싶다고 한 사람이 코치의 거듭되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단지 여타의 평범한 샐러리맨처럼 10억만 있으면 일을 안 해도 되고 좀 더 살기 편할 것이라는 정도의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사람의 사례를 들었지만 금연이나 금주, 규칙적인 운동, 자기계발 등 모든 계획들도 마찬가지이다. 막연히 그렇게 되면 좋다고 해서 세운 계획과 그 결심은 지속적인 추진력을 가질 수가 없다. 해마다 세웠던 계획들이 성취되지 않았던 경험을 떠올리기만 해도 직관적으로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왜 그런지 설명하면 이렇다.
자기의 삶은 자기의 무의식에 각인된 내용이 현실로 펼쳐지는 영화이다. 무의식에 각인된 내용이라는 것은 곧 자기가 스스로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는 습관적인 생각의 집합이다. 그래서 현재 삶은 자기 생각의 결과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막연히 원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그것이 나에게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라고 표면적으로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더라도 무의식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그 결과 자기의 무의식이 '아직 그렇지 못한' 현실을 연장시킨다. 무의식적 사고가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로 원하는 사람은 다르다. 자기가 원하는 바를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할 수 있을 정도로 간곡히 원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놓는 '시간이 많이 걸릴 거야. 경제적 여유가 없어. 그것을 이루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 내 조건이 별로야. 나는 너무 바빠.' 등의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를 하지 않는다. 또한 결핍된 현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핍을 보지 않는다. 자기가 바라는 상황에만 올곧이 집중하기 때문에 현실은 성취의 과정일 뿐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정말로 원하는 사람은 이미 되어 있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떠올린다. 그리고 이루어진 기쁨과 성취감과 감사함을 생생하게 느낀다. 한 번의 공상으로 그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느낀다. 이는 곧 자기 무의식에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각인된 내용은 무의식에 녹아들게 되고, 녹아든 내용은 곧 현실이 된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의식에 각인되면 현실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이루어져 있는 것을 마음으로 보고, 그 기쁨과 성취감을 진실하게 느끼는 사람은 이루어지는 행위를 저절로 하게 된다.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서 힘들게 노력하거나 애쓰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솟는 열정과 즐거운 마음으로 성취의 과정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이다. 몰입할수록 잠재능력이 개발되고 자기의 한계가 사라지며, 자기가 원하는 것을 결국에 성취하게 된다.
로저배니스터라는 육상선수는 사실 옥스포드 대학의 의과대학생이었다. 1950년대 초 그는 올림픽의 우승후보였지만 아쉽게도 4위에 그쳤다. 하지만 그는 다시 목표를 잡았다. 1마일(1.6km)의 4분 대벽을 돌파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통념으론 1마일을 4분 안에 달리면 인간의 폐와 심장이 파열될 것이라고 여겼다. 인간이 4분 안에 1마일을 달린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로저 배니스터는 달랐다. 그는 그 기록을 깨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 그러면서 그가 했던 훈련 중의 하나가 바로 자신이 4분벽을 주파하는 그 순간의 장면이었다. 그는 그의 마음으로 올림픽에서 테이프를 끊는 자신과 기자들의 카메라 빛이 터지는 장면과 꽉 찬 관중들을 보았다. 그리고 관중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와 카메라 셔터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그의 가슴은 터질 듯했고 그의 땀방울이 몸에 가득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그는 전광판의 자신의 기록을 쳐다본다. 이런 생생한 목표를 상상하는 연습은 매일 1시간 가량씩 추가로 실시되었다.
그리고 1952년 그는 마침내 3분 59초 4라는 기록으로 1마일을 주파했다. 실제 그의 증언에 의하면 상상훈련을 꾸준하게 하던 중 어느 순간부터는 의식적으로도 '내가 이미 기록을 깬 것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로저 베니스터가 다른 선수들과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다른 선수들도 상상훈련을 할 수 있고 한계를 돌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원하지 않았다. 원했다고 해도 막연한 희망정도에서 그쳤던 것이다. 로저 베니스터는 정말로 자신이 4분 안에 1마일을 주파하기를 원했다. 간절히 원했다. 간절한 염원이 이루어진 것처럼 느끼는 훈련을 지속하게 했고, 공상같은 염원이 현실로 나타나게 한 것이다.
그래서 간절함이 수반된 마음, 진정으로 원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것이 성취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자가 말했다. '만약 무언가에 근거해 살아가고자 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도처에서, 심지어 가장 일상적인 것에서까지 보게 될 것이다.'
자기가 정말로 간절하게 무엇인가를 원하고 그렇게 살고자 한다면 당신은 이미 현실에서 이루어진 것을, 이루어지게 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고 듣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자기 자신에게 진지하고 또 진실하게 물어라.
'나는 그것을 정말로 원하고 있는가? 막연히 바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