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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진화론에 대한 인간의 고집

 

 

100년 전인 1906년 9월 뉴욕의 브롱크스 동물원의 원숭이 전시관에 오타 벵가 라는 사람이 오랑우탄과 함께 사람들에게 전시되었습니다. 동물원 입구에는 `한 달 동안 원숭이 우리에 사람을 전시합니다.`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고 그가 갇힌 우리의 팻말에는 다음과 같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피그미, 이름 오타 벵가, 23세, 키 4피트11인치, 몸무게 103파운드. 콩고자유국 카사이 강 근처에서 새뮤얼 버너 박사가 데리고 옴. 9월 중 매일 오후에 전시됨.>


오타 벵가는 콩고의 피그미족 출신이었습니다. 콩고 군대는 그가 살던 마을을 공격하여 그의 부인과 두 아이를 죽인 후 오타 벵가를 노예로 끌어가려했습니다. 이것을 본 사업가 겸 선교사인 새뮤얼 필립스 버너가 협상 끝에 그를 미국으로 왔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이 지배적이었던 시절이었음으로 유인원과 인간을 연결하는 고리로 오타 벵가를 내세워 진화론을 합리화 시키려 했고 또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를 대상으로 갖가지 실험을 한 후 원숭이 동물원으로 보낸 것입니다. 동물원 관계자들은 인간이 영장류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을 관람객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이 같은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신문들은 오타 벵가가 식인종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는 듯 전시장 바닥에는 일부러 뼛조각들을 뿌려 놓기도 했습니다.


'사람 살을 뜯어 먹는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의 이빨을 유심히 살피면서 사람을 뜯어 먹는 장면을 상상하며 그에게 험한 욕지거리를 퍼붓거나 쿡쿡 찔러 그를 괴롭혔고 그는 사납게 날뛰며 폭력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이러한 비인간적 행위에 대해 일부 사람들이 항의했지만 인종주의적 편견을 지닌 사람들이 훨씬 많아 이러한 항의가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뉴욕타임스' 같은 큰 신문에서도 그를 학교로 보내봤자 인간이 될 가능성이 없으며 피그미족은 원래 하급 인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후 오타는 동물원에서 풀려나 버지니아주 린티버그의 담배 공장에 취직하여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고도 담배 공장의 굴뚝에 올라가 업무를 처리하는 등 그의 능력(?)을 인정받기도 하며 문명을 배우려고 노력했지만 인종차별이 팽배한 문명사회에 절망하여 권총을 훔쳐 32살이 된 1920년에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잘못된 이론이 인간을 스스로를 모독하고 인간을 원숭이의 반열에 내려놓음으로 인간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학대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고 생각됩니다. 다문화 시대로 접어든 오늘날에도 인종주의적 편견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오타 벵가를 우리 속에 가두어 두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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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에 대한 인간의 고집이 만들어낸 불행이랄까요?

진화든 창조든 인간의 시원에 대한 물음은 완벽한 답을 얻기 힘듭니다. 둘 다 믿음이 필요한 것이지요.

하지만 고집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진화도 이런 어리석은 과거를 가진 적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린 어는 한 입장에 대해 고집부릴 필요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