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1년 38살의 나이에, 생일날이기도 한 2월의 마지막 날에, 미셀 드 몽테뉴는
법원의 공적 업무에 넌더리가 나서 고향의 품으로 은퇴했다. 이제 그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허락한 절반이상 남은 삶을 조용히 모든 근심을 털어내고 살아가리라.
운명이 허락한다면 이 안식처, 조상이 남긴 이 즐거운 은거지에서 삶을 마치리라.
자유와 평온과 여유로움에 이 은거지를 바치리라.
이 구절은 자신이 은거한 중세의 성탑 안에 미쉘 드 몽테뉴가 은퇴를 자축하며 써 둔 글입니다.
그는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보르도 고등법원에서 참사관으로 13년간 근무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그는 법과 정치에 신물이 났고. 원래 그것을 좋아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연한 슬픈 사건이 그를 행동하게 했습니다.
절친한 친구 보에티가 32살의 나이에 장질환으로 갑자기 죽어 버린 것입니다.
친구의 죽음은 몽테뉴를 더욱 우울하게 했습니다.
그는 결국 38살에 사표를 내고 옛집으로 은둔했습니다.
그의 옛집은 보르도 동쪽 50 키로 쯤에 위치한 포도밭 언덕 위의 중세의 고성이었습니다.
그는 이 성의 둥근 탑을 개조했지요.
1층에 작은 예배실을 꾸몄습니다. 예배당 위에는 침실을 두었습니다.
예배당과 침실 사이에는 소리관을 파두어 신장결석으로 꼼짝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을 때에도
예배실의 미사를 들을 수 있도록 해 두었습니다.
침실 위에는 서제가 있습니다.
책상 하나와 벽전체를 두른 반원형 책장을 만들어 두었지요.
그리고 모든 책을 그곳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완벽한 은둔처가 마련된 것입니다.
스스로의 말을 빌리면,
몽테뉴는 덤벙대고 수다스럽고 지극히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집중하지 못하고 지루한 것을 견디지 못했지요.
말을 타고 시골길을 끝없이 달리기를 좋아하는 늘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포도밭 위의 시골 중세의 탑에 은거해 살 수 있게 되었을까요?
어떤 우연이 그의 손을 잡고 운명으로 이끌었을까요?
어쩌면 중년의 위기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당시는 이 나이면 벌써 중년의 시작이니까요)
친구 보에티의 요절이 삶을 되돌아보게 했을 것입니다.
그는 갑자기 철학자가 되었으며, 자기 탐구에 열을 올리게 되었지요.
그는 새롭게 찾은 인생으로 글을 쓰고 싶어 했습니다.
무슨 글을 쓸까?
한 번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최초의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써야할 지 몰랐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 것도 쓸 것이 없었다. 나는 공허한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주제로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나는 다른 문제들 보다 나 자신을 연구했다.
이것이 내 형이상학이고 내 물리학이다"
결국 그동안의 철학적 과제였던 '너 자신을 알라'라는 과제는
몽테뉴에게는 '너의 자서전을 써라' 라는 말로 이해되었지요.
그의 두꺼운 '수상록'은 이렇게 탄생되었습니다.
수상록의 원제목인 essai는 프랑스어로 '시도(試圖)'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이 수상록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시도를 한 셈입니다.
그러므로 수상록 속의 글들은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이고 폭로적인 호소들이 많습니다.
몽테뉴에게 중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즐거움에 있었으니까요.
수상록이 무려 1200 쪽에 달하는 이유도 자신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계속 수정하고 보완해 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속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정말로 진실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믿고 인정하도록 만든 것에 불과하다"
자기경영은 '나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의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들을 듣게 되지만,
결국 자신 앞에 다가서는 모험을 거부하지 않고 즐기는 것입니다.
.....구본형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네 자신을 알라”는 경구를 인용하며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성찰할 것을 갈파했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아는지 관계없이 귀에 딱지가 않도록 이 말을 들어왔고,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들은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 심리학과 사이먼 바지르 박사팀은
“사람은 스스로의 감정은 잘 느끼지만 스스로 좋아지기를 바라는 지능,
매력, 창의력이나 희망사항 등의 특징은 남보다 더 모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바지르 박사팀은 자신이 개발한 ‘자아-타인 인지 불균형(SOKA)’ 실험을
165명의 자원자에게 실시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몇 개의 다른 일을 주고 IQ 테스트를 실시했다.
또 누가 지도자의 자질을 가졌는지 보기 위해 집단 토론을 실시했고,
누가 엄격한 척 행동하는 사람인지 보기 위해 좁은 방에서 사회 스트레스 테스트
(Trier Social Stress Test)를 실시했다.
또 사람들 앞에서 자기 몸의 장단점에 대해 말하게 했다.
연구진은 모든 실험이 끝난 뒤 각각의 참가자들에게 40개의 성격 평가 양식을 통해
스스로와 다른 참가자들을 평가하게 했다.
그 결과 람들은 자신의 생각, 느낌, 슬픔, 걱정 등의 내면적 특징은 정확히 평가했지만
밖으로 드러나는 지능, 매력, 창의성 등의 외향적 특징은 다른 사람들보다 덜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남들보다 잘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지르 박사는 자신의 일부 특징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알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모든 사람은 늘 매력적이고 지적으로 보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자기 객관화에 실패하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친구가 똑똑하지 못한 것은 상관없지만 자신이 똑똑하지 못하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위협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스스로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한다는 것.
이 연구결과는 ‘성격과 사회심리학’지 2월호에 발표됐으며
미국 온라인 과학뉴스 사이언스데일리 등이 27일 보도했다.
****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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