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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잡생각들

2012년 5월23일 Facebook 이야기

  • 지난 주말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노환과 호흡기 질환으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터이고
    오히려 본인의 고통이 길어지는 것이 주변을 안타깝게 하던터라
    처음 부음을 들었을 때 큰 슬픔보다 오히려 안도감이 들더군요.
    3일장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화장을 통해 고향 산 가족 납골묘에 모셨습니다.

    한달 전 쯤인가, 입원하고 계시던 요양원을 찾았었습니다.
    이미 치매가 온 상황이라 이름을 말하고 문병을 하는 중에도
    뜬금없이 "누구고?"라고 물으셨지요. 그 때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큰아버지를 꼭 안아드렸습니다. 정말 피부아래 근육도 없이 뼈만 있는 듯 했습니다.
    "큰아부지, 마음 편히 계시이소"라는 말에 "생로병사"라고 크게 말씀하셨지요. 그 말씀이 나고 늙었으니 병들고 죽는 것은 당연하니 걱정말라는 듯이 들렸습니다. 말미에 "볼 사람 다 봤다"하시더군요.

    사실 하나 뿐인 동생인 제 아버지는 보지 못하셨지요.
    저의 가친은 친형의 빈소를 찾아 그저 덤덤히 재배를 하시고는
    얼마 안되어 자리를 뜨셨지요. 교직을 은퇴하신 후 사업의 실패와
    그에 따른 우울증과 그 후유증으로 근10년을 바깥 출입을 하지 않으시고
    본인의 감정 표현을 거의 하지 않으십니다. 빈소에서도 그랬지요.
    저는 아버지의 슬픔이 크지 않은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종잡을 수 없었는데, 아버님이 본가에서 하시는 말씀이 충격이었습니다.
    "이제 내 차례구나!"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습니다.
    속내를 잘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니 마음에 충격이 얼마나 큰 지를
    자세히 알 수도 없고, 이로인해 우울증이 재발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참 착찹했었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손녀인 제 딸을 보며 "많이 이뻐졌다"고 하시더군요.
    마침 문상하러 와 있던 막내 여동생이 "나는?, 아부지 막내 딸인 나는?"이라고 떼를 쓰니 " 이뿌지"라고 억지 대답하신 후 다시 손녀를 보며 "많이 이뿌다"라며 두팔을 벌려 손녀에게 안기라는 표현을 하셨지요. 눈치 빠른 딸아이가 할아버지에게 냉큼 안기며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할아버지~" 라고 할 때 우리 가족 모두는 웃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랜 만에 이런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적잖이 안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순서'라는 체념보다 '이뻐지는 손녀'에 대한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또 가족에 대한 당신의 감정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저도 이제 곧 50줄이니, 두분 부모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저를 좀 더 긴장되고 초조하게 만듭니다. 내가 생각하는 큰 효도는 이미 불가능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작은 행복한 순간들과 그 추억들이 가족을 가족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귀가 잘안들리시는 아버님을 위해 어머님 핸드폰 문자로 아침 문안을 드렸습니다. 아마 어머님이 보여드리시겠지요. 그러면서 두분도 한 마디 말이라도 더 나누실겁니다. 이제부터 아침 저녁 문자로나마 아버님께 당신 아들의 마음을 보내드릴 작정입니다. 돌아가신 후에 아무리 울어봐야 소용이 없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