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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독후감

[스크랩] 조영남의 책을 읽고 나서...


조영남의 책을 읽고 나서...


" 예수의 샅바를 잡다"라는 제목을 대하면서 야곱을 떠올렸다.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겼다는 성경 속의 인물, 야곱.

 

성경은 예수에 촛점이 맞추어진 책이다.
그런데 예수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다. 신의 아들, 사람의 아들. 인자..
실존이니 가공이니... 진실은 믿는 자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기 이전에 신을 인정하느냐의 문제를 먼저 접하게 되고
신을 인정하고 나면 유일신의 인정문제가 대두된다.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이 하나가
아니라면 우린 신의 수만큼의 세상을 경험해야하므로 유일신을 인정하게된다.
그리고 나서 내 인생이 그 유일신에 의해 창조되었는지...아니면 그저 우연에 의해
진화된 동물의 하나인지를 결정해야한다.

 

신이 목적을 가지고 나를 만들었다는 것,인정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
나는 내가 창조된 존재라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의심을 제외시켜버렸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고 내 삶에는 그의 목적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런데 죄의 문제와 대속의 문제 그리고 부활의 문제와 영생의 문제 등등
끊임없는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인정의 문제가 계속 대두된다.
그저 믿으라는 이야기는 내겐 공허한 외침이다.
그래서 나도 성경을 붙잡고 씨름을 하고 있다.
샅바를 잡고 있다는 이야기다.
조영남이 잡은 샅바를 나도 똑 같이 잡고 있다.

 

조영남이 잡은 샅바는 비교 종교학적 입장에서 상당히 접근하고 있다.
예수의 영향력 범위 내에서 살아 왔으면서 예수를 객관적으로 보려는
비예수적인 집단의 의견을 끌어들여 자신을 그 경계선 상에 놓고 저울질하는 모습.
조영남과 내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잠시했다.

조영남은 나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같다.
예수에 대해 그리고 다른 많은 종교들에 대해...

 

예수를 예수 안에서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예수를 예수 밖에서 평가하는 것은 더 어렵다.
이런 어려움을 조영남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사람의 아들로서의 예수,
역사적 실존으로서의 예수를 평가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어느 정도 알았다고 책말미에 이야기했는데...
그가 무엇을 알았는지, 내가 알고 싶은 것을 그가 알았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조영남이 암시했듯이 예수에 대한 이런 평가들이 신앙적 갈증을 해소시켜주지는 않는다.
기독교는 아주 개별적이면서도 체험적인 신앙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습관적으로 세상과 믿는자를 구분하기 때문에 세상으로 부터 소외된다.
그런데 그들은 소위 그들이 구분하는 세상의 한 일원이며 그들과 똑같은 존재양식을
가지고 살고 있다. 신념만 다르다. 조영남의 표현을 빌면 신앙만 다르다.
그러면서 그들은 구별되는 삶을 추구한다.

기독교인으로서의 구별됨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실천이다.
같은 존재 양식 속에서의 신앙의 실천, 정말 어려운 문제다.

 

기독교인들이 기도를 할 때 누구에게 하는가?
하나님 아버지에게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고백해야한다.
왜? 성경에 그렇게 하라고 되어 있으니까?
딱 꼬집어 그렇게 되어 있지는 않지만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가 없다고 예수 본인이 말을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또다른 모습인 예수님을 통해야만 하는 기도,
여기서 부터 비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모순이 시작된다. 
기독교인들에게도 모순이지만 모순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그들에게는
모순이 아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의 인간과 함께 하는 존재 양식으로서
3위일체를 인정하고 나면 예수는 곧 하나님으로,
내 의식에 있어서는 더 이상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미션은 두가지다.
하나는 복을 누리면 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형상으로 말씀하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둘다 복과 관련한 것인데 그 복이란 것이 무엇일까?

8복? 아니다. 궁극적인 것이 아니라 수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궁극은 무엇일까?
그것은 천국과 영생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낙원으로의 회귀이다.
악에 물들기 전의 낙원,
삶에 있어서 선을 추구하고 의로운 행위로 인해 천국을 수여받는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항함으로서 낙원 입장의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기 때문에
현생의 삶에 있어서의 많은 인간적인 규칙들을 이야기한다.
예수 이전에는 그런 규칙들이 인간을 선하게하는 줄 알았다.

그것이 오해였다는 것을 예수의 형상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악에 대항하는 가장 큰 무기는 사랑이라고.

 

(하나님에 대한)믿음과 (천국에 대한)소망과 (사람을 향한)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
하나님의 본래 의도한 의를 이루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랑은 가장 쉽고도 어려운 것이다.
특히 악을 대항하는 방법으로써 악을 감싸 안아야 하는 경우는 정말 어렵다.
그것이 남의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것이면 더 어렵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조영남이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조영남이 그의 관념의 여정이 아닌,
정말 쉽고도 어려운 이 문제를 위해 그 많은 시간을 할애했기를 바란다.  
이 말은 내 관념의 여정에 대한 대리 만족으로서는 갈증이 난다는 이야기다.

 

거울을 보듯이 책을 한 번더 건성건성 훝어 본다.
그리고 내 샅바를 다시 한 번 고쳐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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