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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자의 도마일기

신앙에 대한 자문자답8

 

[ 삶의 위기/ 신앙적 위기/ 신앙인의 위기...]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합친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위기는 살다보면 당연히 겪는 일이요 삶의 한 내용이요 때론 촉진제이다.
흔히 우리는 질병과 죽음, 권력이나 직위의 박탈 ,파산이나 가족의 해체,좌절
혹은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존재에 대한 대접이 소홀해짐에 이르기 까지 위기 의식을 느낀다.


최근 연예인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한 개인으로서의 주견이 뚜렷한 삶이 아닌
남에게 휘둘리는 삶을 동경했던 결과 껍질뿐인 '스타대우'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정확히 말해 '위험'을 느껴야함에도 '위기'를 느끼는 이유는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최악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 자신만은 절대 그 상황을 최악으로 규정지는 않는다.
그 자신 스스로 최악으로 만들어 내고 나면,
남아 있는 것은 의미없는 죽음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끝까지 기회의 끈을 놓지 않는다.

다만 포도 껍질 같이 말랑말랑하던 기회의 씨앗이 호두껍질 처럼 단단한 껍질로 둘러 싸여지게 됨으로써

기회가 발아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스스로를 몰아가는 경향은 있다.
이것은 시간이 오래 지나면 좌절로 우울증으로 거듭되고급기야 기회의 씨앗에 더이상 양분이 공급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되는데 이 때는 정말 어이없는 죽음이라는 선택을 하게된다.
말라비틀어진 기회의 씨앗은 죽음이 수분인줄 알고 목을 축이려다가 죽음의 불에 타서 죽어 버린다.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은 홧김에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삶의 위험은 기회의 부재에서 온다.
늙어서 죽는 것도 위기다.

늙어지면서 젊을 때 했던 것을 할 수 없게 됨으로써 무기력감과 분노가 많이 생길 수 있으며

더우기 '소외'라는 단어를 만나면 정말 미쳐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늙는다는 말에 삶의 경륜과 여유를 추가할 줄 안다.
그에 맞는 기회를 늘이는 지혜인 것이다.
심지어 죽음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몸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으면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최악의 상황에서도 기회를 생각하고 기회를 늘이면 우리는 죽음의 순간에까지 기회를
잘 살린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삶의 위기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과 인간이 어찌할 수는 있으되 쉽지는 않은 영역에서 온다.
그러나 신앙인의 위기는 삶의 위기에 맞서는 그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은 정신적 구조물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기회를 더 크게 보는 것도 마음이다.
따라서 기회는 정신적 구조물을 토대로 나온다.
마음은 마음대로 안된다. 왜냐하면 마음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마음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을 정신적 구조물로 인식하고 기둥을 세워서 구조를 만들면 그 기둥을 바탕으로
기회가 생겨난다. 그 기둥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봤다. 8복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자는 복이 있나니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이 8가지 복의 기둥들은 해당하는 복을 누리게되는 원인과 그 결과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있다.
하지만 신앙인의 위기는 8복에서도 그치지 않는다.

" 그래서 뭐 어쨌다는건데? 사람 죽게 생겼고 먹고 살기 바쁜데 저런 복이 무슨소용이야?"
기회는 로또가 아니다.

로또는 사람을 미혹하게하으로 선한 도구는 아니라고 본다.
기회는 근육처럼 처음에 1Kg의 중량으로 단련하게하고 5kg ,10kg, 50kg,100kg로 늘여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미크게 굴려 놓은 눈덩이만 보지 처음 눈을 뭉쳐 알을 박고 굴리기 시작한 모습을
상상하지 않기 때문에 육신의 눈이 아니라 지혜의 눈으로 기회를 바라보아야한다.

 

그래서 신앙인의 위기는 인내의 위기다.이미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위기라고 했는데,
거기서 더 참아 내어야 기회가 기회다와진다고 생각하는데 어떠신가요들?

 

신앙적 위기는 계시록에 나와 있는 많은 예언들이 그 원인들이다.
개인의 차원이 아닌 교회가 타락하고 사회가 부패하고 사람이 사람을 신으로 만들거나
스스로 신이되고자 하는 교만의 결과로 신앙적 위험은 온다.

그러나 신앙적 위험은 신앙적 기회이다.
성도가 연합할 수 있는 기회요,
나 아닌 남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기회요
행동하기 싫어도 행동해야만 하는 기회다.

 

나와 교회와 부산과 조국을 바라본다.
나의 위기화 교회의 위기와 부산고 조국의 위기가 보이기는 한다.
이미 방법도 적었다.
나의 위기에서 부터 출발해서 조국의 위기에 이르기 까지 실천하면서 근육을 키워나가는
'기회'가 지금 내 앞에 너무도 분명히 와 있음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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