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유학생이던 이병찬 씨(45)는 1996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국에서 취직하기를 희망했다.
우선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시골에서 면장까지 지냈던 아버지가 막내아들 취직 자리를 부탁하기 위해
모 국회의원을 찾아가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
그 후에도 몇 군데 취직하려고 수소문을 해봤으나 나이(당시 33세)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올 때 품었던 신문기자나 방송국 PD로서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취직이 아닌 일본에서 내 사업을 해 보란 듯이 성공하리라.` 그는 다짐했다.
64년생인 이 사장의 대학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84년 경기대 회계학과에 입학했으나 공부가 아닌 학생운동에 정열을 쏟았다.
병역 의무를 마치고는 `청년기획`이라는 회사를 차려 각종 인쇄물이나 티셔츠를 만드는 사업에도 손을 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대 3학년 때 중퇴하고 사업체도 정리했다.
수중에 400만원이 남았다. 당시 이 돈으로 유학 갈 수 있는 나라는 가까운 일본밖에 없었다.
90년 4월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본으로 건너와 1년 반가량은 어학을 배우러 학원에 다녔다.
92년 일본대학 법학부 신문학과에 신입생으로 들어갔다. 만 27세로 동급생보다 나이가 일곱 살이나 많았다.
대학 학비와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스스로 벌었다. 첫 아르바이트는 신문배달.
오전 3시에 일어나 6시 반까지 조간신문을 돌린 후 학교에 갔다.
강의가 끝난 오후 3시부터 4시 반까지는 석간신문을 돌렸다. 이런 생활을 1년 반이나 했다.
그 다음에 택한 아르바이트는 여행 가이드. 이 사장은 비록 유학생 출신 가이드였지만 호텔이나 관광지,
쇼핑센터에서 일하는 일본인과 친분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성실, 근면, 열정을 보여주자
일본인들도 그를 높게 평가했다.
96년 초 한국에서 취업이 여의치 않자 창업을 염두에 두고 직장을 잡았다.
그해 3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만 출신이 운영하는 직원 10여 명의 여행사인 WAS(World Air Service)에 입사했다.
다만 평사원이 아닌 한국 여행객을 일본으로 끌어오는 한국데스크 팀장으로 갔다.
처음에는 50만엔을 밑천으로 회사 내 소사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WAS에는 일정 수수료만 주고 나머지는 본인이 가져가는 방식으로 일했다.
사업 규모가 점차 커지자 99년 8월 아예 독립해서 `주식회사 우진여행사`를 차렸다.
이 사장은 창업 때부터 철저하게 실질과 이익을 중시했다.
종업원에게 업계 평균보다 많은 임금을 주는 대신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일처리를 요구했다.
그의 이 같은 면모를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과거 전체 직원이 6명이던 시절, 일감이 늘어 직원 1명을 더 고용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다.
늘어난 직원 인건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위해 한국의 한 암자를 찾아갔다.
이틀간 고민한 끝에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일본에 사무실을 낸 한국 기업들에 호텔 방을 소개하는 비즈니스를 하자는 것이었다.
곧장 일본으로 돌아와 한국 기업들 각 사무실에 팩스를 넣었다.
그 결과 한달 평균 50만엔 이상 추가 수입이 들어왔다. 새로 채용한 직원 연봉을 번 셈이다.
그후 우진여행사는 2005년 하나투어와 합병해 `하나투어 재팬`으로 거듭난다.
하나투어 재팬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 일본을 다녀간 여행객은 2005년 설립 연도에는 6만명에 불과했으나
2006년에는 12만명으로 늘었다. 2007년에는 두 배 가까운 23만명으로 불어났다.
하나투어 재팬은 일본에서 영업 중인 전체 여행사 가운데 매출액(외형) 기준으로 57위다.
경상이익은 19위다. 그만큼 1인당 생산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 사장에게 꿈을 물었다. "뉴커머 출신 사업가로서는 처음으로 2010년 일본 증시에 회사를 상장하겠다."
뉴커머는 재일동포와 달리 80년 이후 유학을 위해 일본에 왔다가 일본에 터전을 마련한 사람들이다.
그토록 증시 상장에 집착하는 이유를 물었다.
"직원들에게 꿈을 주는 방법이 상장이다.
상장을 통해 함께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우리사주나 스톡옵션을 제공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일본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물었다.
"열정과 배려만 있다면 일본은 기회의 땅이다."
본인이 정한 특정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
직원ㆍ고객ㆍ거래처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이를 행동하는 사람을 배반하지 않는 것이 일본 시장이라고 말했다.
"한우물을 파라."
이병찬 사장이 99년 독립해 10년이 채 안돼 지금과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던 비결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본인이 경쟁력을 갖췄다고 생각하는 분야에서 승부를 걸었다.
남들이 크게 생각하지 않는 니치마켓부터 공략했으며
철저하게 현장을 중시한 경영을 해온 것도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도쿄 = 김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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