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설계회사 텔레칩스의 서민호(徐敏浩·45) 사장은 직원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열정적이다. 1년에 절반은 해외 출장을 가는데, 항상 주말이나 휴일 출발해서 귀국하는 일정이다.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출근하기 위해서다. 서울에 머물 때에도 퇴근이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회사 매출이 1000억원을 넘는데도 비서도 기사도 없다.
지금도 1998년식 EF쏘나타를 직접 몰고 다닌다.
그는 "아직은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그의 열정적인 단면을 드러내는 일화는 또 있다.
중국에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창궐하던 지난 2003년,
그는 방제차량 외에는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는 베이징을 방문했다.
"당시 중국 업체와 함께 신제품을 개발 중이었는데, 한 달에 두 번씩은 중국을 방문해야 했습니다.
전염병이고 뭐고 가릴 틈이 없었습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쓴 덕분에 중국 파트너들로부터 돈으로 살 수 없는 신뢰를 얻었다"고 말했다.
텔레칩스는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반도체 설계 전문회사다. MP3 플레이어·휴대폰 등 IT 기기에
들어가는 핵심 칩을 개발하는 곳. 한국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등 메모리 부문에서는
세계 최고이지만, 고도의 창의성과 설계 기술이 필요한 비(非)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한참
뒤처져 있다. 그런데도 서 사장은 "비(非)메모리 시장에서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겠다"며 지난
1993년 삼성전자 연구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창업을 했다. 그는 삼성전자 동료들과 함께 한국
비메모리 반도체의 1세대 기업 격인 씨앤에스테크놀로지를 만들었다가 1999년에 현재의
텔레칩스를 설립했다.
텔레칩스는 1999년 창립 때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하지 않았으며,
매년 매출이 30% 이상 급증하고 있다. 올해에는 매출 1160억원, 순이익이 23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텔레칩스 경쟁력의 원천은 R&D(연구개발) 분야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다.
텔레칩스는 전체 직원의 70%가 R&D 인력이며, 매출의 20% 안팎을 R&D 부문에 투자하고 있다.
여기에는 반도체 설계 회사의 특성, 즉 연구 개발 위주이며 제품 생산은 외부에 위탁하는 사업적
특성이 반영된 측면이 크다.
하지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 서 사장의 소신이다.
그는 "로비나 접대로 돈을 써가며 팔아야 하는 물건은 만들지 않겠다.
오로지 기술과 품질로 승부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그는 "초창기 시절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온종일 업체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세일즈를 했지만
월 판공비는 수십만원 정도였다"고 말했다.
텔레칩스가 개발한 반도체 칩을 보면, 이 회사 특유의 기발함과 순발력이 돋보인다.
예를 들어 이 회사는 지난 2003년 당시로서는 처음으로 음악재생뿐 아니라 녹음기능까지 추가한
MP3 플레이어용 칩을 개발, 세계적인 오디오 회사인 톰슨에 공급했다.
또 최근 현대차에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자동차 오디오용 반도체 칩은 다른 회사 제품과
달리, CD나 DVD뿐 아니라 휴대용 USB드라이버에 저장돼 있는 곡들까지 재생할 수 있다.
서 사장은 "대기업을 따라잡기 위해 다양한 기능을 갖춘 융·복합 칩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 사장은 "IT제품의 수명주기는 갈수록 짧아지고 게다가 한 수 아래로 취급했던 중국 반도체
디자인하우스들도 지금은 한국을 능가하고 있다"면서 "유목민처럼 낡은 것은 과감히 버리고
빠르게 변화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형래 기자 hrc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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