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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읽기

건어물녀

 

#요즘 문화 트렌드의 화제는 단연 ‘초식남’과 ‘건어물녀’다. 한마디로 연애·결혼에 관심없는 남녀다. 일본에서 건너온 조어다.

초식남은 전통적이고 강한 ‘육식남’에 반하는 온순한 남자, 연애보다 일과 취미에 열중하는 남자를 일컫는다. 일본 아이돌그룹 ‘스마프’의 구사나기 츠요시가 대표적이다. KBS 드라마 ‘결혼못하는 남자’의 건축설계사 지진희, tvN 시트콤 ‘세 남자’의 컬럼니스트 정웅인도 초식남. 세련된 외모에 유능한 직업인이지만, 연애는 뒷전이다.

건어물녀의 원조는 일본 드라마 ‘호타루의 빛’의 아야세 하루카다. 평소 깔끔하게 차려입고 다니지만 집에만 돌아가면 늘어진 운동복을 입고 지저분한 방바닥을 뒹구는 커리어우먼들을 일컫는다. SBS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스타일리시한 도시 여성의 욕망을 연기했던 최강희가 개봉 예정인 영화 ‘애자’에서 건어물녀로 변신할 예정이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초식남, 건어물녀 테스트도 유행이다. 초식남이라면 ‘격투기가 왜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회사에서 건배할 때 음료수도 오케이’ ‘여자 친구는 많아도 애인으로 발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편의점 신제품에 항상 관심을 가진다’ 등이 문항이다. 건어물녀는, ‘휴일에는 노 메이크업 & 노 브라’ ‘냄비에 직접 대고 라면을 먹는다’ ‘최근 가슴이 두근두근했던 일은 계단을 뛰어 올라갔던 것 정도’ ‘1개월 이상 일이나 가족관계 이외의 이성과 10분 이상 말하지 않았다’ 등이다.

일본에서는 초식남의 등장 요인을 과열된 경쟁과 경제위기의 반영으로 분석한다. 과도한 현실 경쟁 속에서 젊은 남성들이 한 가정을 책임지는 결혼이라는 행위 자체를 미루려는 심리라는 것이다. 가정을 위해 희생하는 대신 자신에게 투자하는 자기애적 경향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 김혜남은 초식남의 등장을 남녀관계의 전복, 모계사회화와 연관시킨다.

#흥미로운 것은 문화 트렌드나 라이프 스타일에서 한국 사회가 일본을 1~2년 간격으로 바짝 쫓고 있다는 점이다. 두 사회 젊은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이 그만큼 유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눈여겨볼 부분은 ‘섹스를 통한 종의 재생산’을 방기하려는 젊은 세대의 경향이다. 2000년대초 요시모토 바나나를 중심으로 일본 소설들이 한국에 열풍을 불러 일으켰을 때, 평론가들은 일본 소설의 특징 중 하나로 ‘무성성’을 꼽은 바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암리타』에서처럼 젊은 남녀가 친밀하게 지내도 섹스하지 않고 아예 성적 욕망 자체가 없는 듯 행동한다든지, 아니면 게이 남자와 이성애 여자로 이뤄진 가정처럼 ‘섹스는 없고 연대감은 있는’ 가족모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초식남, 건어물녀, 혹은 무성성은 섹스하지 않는, 그래서 더이상 ‘생산’하지 않으려는 현대인의 초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과열된 경쟁적 환경이 그 사회 성원들로 하여금 스스로 종의 재생산 주체가 되기를 거부하는 상황을 만든 것은 아닐까. 날로 금단의 영역에서 양지로 나오고 있는 동성애 역시 생산하지 않는 성인 것은 마찬가지다.

상상력에서 출발했으나 놀라울 정도로 인류의 미래를 예견해온 SF영화들은 이미 리얼 섹스를 거부하고 사이버 섹스만을 하거나, 그 결과 출산이 희귀해져서 국가가 계획적으로 출산을 관리·통제하는 풍경을 보여준 바 있다. 영화 ‘데몰리션 맨’ 등의 섬찟한 미래상이다. 어쩌면 그 디스토피아는 그리 멀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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