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에서 성공적인 CEO 승계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 대표적인 곳은 건설사업관리(CM)기업 한미파슨스다. 미국과의 합작회사인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현 김종훈 회장의 뒤를 이을 ‘CEO 후계자’로 이순광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선임하면서 CEO 승계 시스템의 ‘롤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김종훈 회장 “5년 전부터 물려줄 것 고민”
한미파슨스가 설립된 지 8년여 시간이 지난 2004년의 어느 날. 설립자인 김종훈 회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회사를 운영해 온 지도 8년이 흘렀고, 장수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지금 시점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 특히 리더(CEO)의 역할이 중요한데… 아무래도 영속적인 기업의 운영을 생각해서라도 이제 서서히 차기 CEO 후보를 정해놓고 훈련시켜야 되겠다.’
한미파슨스식 ‘CEO 후계자 승계 시스템’은 김 회장의 이 같은 작은 고민에서 비롯됐다. 이후 김 회장은 국내 공기업 사장이나 은행장 공모, 혹은 외국기업 등 참고할 만한 후계자 승계 시스템의 모범 기업을 찾아나섰고, 이를 바탕으로 550여명의 임직원 가운데 1차로 23명의 잠재적인 CEO 후보군을 선정, ‘승계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어 23명의 후보들에게 ‘자질 검증’ 작업을 거치도록 했다. 수년간에 걸쳐 주요 보직을 번갈아 맡기면서 리더십이나 위기관리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보기로 한 것.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의 검증 절차를 거쳐 23명의 후보는 4명으로, 그리고 2명, 다시 작년 12월 최종 후보자 한 명을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최종 후보자에 낙점된 이가 바로 이순광 부사장. 리더십과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신뢰도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그는 ‘최종 CEO 후보자 선정’과 동시에 사장직으로 승진하면서 올 1월부터 경영 전반에 걸쳐 실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한미파슨스의 CEO 승계 시스템이 가동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부분은 현 CEO인 김 회장이 철저히 ‘객관성’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처음 550여명의 임직원에서 최종 1명을 뽑는 순간까지 김 회장이 관여한 것이라고는 ‘CEO 선정위원회’에 사내외의 의견을 전달해 준 ‘배달부’ 역할을 한 게 전부다.
나머지 의사결정은 윤병철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을 비롯해 기업의 인사 전문가, 사외이사 등 명망가로 구성된 ‘CEO 선정위원회’에 전권을 일임했다.
이 위원회가 입사연도, 직종, 성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내 대표 20명과 외부 전문가 10명의 심사를 거쳐 최종 후보자로 2명을 선정할 때까지 김 회장이 일체 관여하지 않은 것. 특히 후보자에게도 자신이 ‘CEO 후보군’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못하도록 ‘보안’까지 요구했다. 혹시라도 있을 ‘줄 서기’나 ‘줄 세우기’를 사전에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CEO 선정위원’으로 참여했던 유순신 유앤파트너스 대표는 “모든 선정 절차가 투명하게 운영돼 임직원들이 이 프로그램을 공유하면서도 공감하는 분위기였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GE·삼성·LG의 ‘승계 시스템’ 벤치마킹
한미파슨스의 CEO 후계자 승계 시스템의 골격은 미국 GE의 인사평가시스템인 ‘세션-C’를 바탕으로 한다. ‘세션-C’는 2~3명의 CEO 후보를 선정해 2년가량 엄격한 교육과 능력평가를 거친 뒤 가장 유능한 한 명을 선발하는 방식으로, 제프리 이멜트 GE 현 회장이 두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잭 웰치의 뒤를 이어 CEO에 오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이 경쟁에서 탈락한 CEO 후보자는 회사를 떠나게 되는 게 GE의 관례다.
한미파슨스는 이 같은 GE의 ‘세션-C’를 회사 상황에 맞게, 고칠 것은 고치고 고수할 것은 고수했다. 예를 들어 ‘언제부터 CEO 승계 프로그램을 세울 것인가’에서부터 ‘부작용은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 ‘외부 영입은 어떻게 하나’, ‘탈락 후보자를 향후 어떻게 배려할 것인가’ 등 한미파슨스의 경영실정에 맞는 판단기준을 설정했다.
이를 토대로 한미파슨스의 후계자 선정 및 승계 과정은 크게 4단계에 걸쳐 진행됐다.
우선 1단계는 지난 2004년부터 진행해온 ‘승계 프로그램 준비단계’를 꼽을 수 있다. 이 단계에서 김종훈 회장은 ‘고잉 컨선(Going Concern, 영속 기업)’을 위해 CEO 승계 프로그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어떻게 승계 시스템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집중했다.
다음으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구체적인 ‘승계계획’이 짜여진 2단계 시기를 보냈다. 이 단계에서 김 회장은 GE의 ‘세션-C’와 삼성, LG의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 및 은행장, 공기업 CEO 공모 프로그램 등을 벤치마킹해 단계별 선정절차나 원칙 등을 승계계획에 입안했다. 가급적이면 외부 인사보다는 사내 임직원으로 ‘CEO 후보자’를 정하자는 원칙도 이 시기에 확정됐다.
3단계는 ‘예비 후보자’를 선정하고 경영능력을 검증한 과정이다. 2008년 회사는 과거 성과와 실적 등을 고려해 사내의 외국인(부사장)을 포함해 4명의 CEO 예비 후보자를 비공개로 선정하고, 보직을 바꿔가면서 이들의 경영능력을 테스트했다.
이어 마지막 단계로 회사는 작년 12월 최종 CEO 후보자를 선정하고 올 들어 본격적인 육성체제에 돌입했다. 최종 후계자로 임명된 이순광 사장은 1~2년간의 검증기간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대표이사(CEO)직을 승계하게 된다.
김종훈 회장은 “우리 회사가 아직은 GE처럼 글로벌기업 스타일의 승계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진 않다”면서도 “그러나 아직까지 혈연 위주의 승계 풍토를 갖고 있는 국내 기업 환경에서 최대한 합리적인 승계절차를 거쳐 성공적인 경영권 이양을 진행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김진욱 기자 acti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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