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 신화` 윤석금 웅진회장 자서전
지난해 1월 웅진이 웅진케미칼(옛 새한)을 인수할 당시 구미공장 노조의 반대는 극심했다. 이때 윤석금 회장이 직접 내려가 노조원들을 설득하겠다며 나섰다.
악수조차 거부했던 노조원 300명과의 대화는 시작부터 살벌했다. 하지만 윤 회장이 3시간 동안 직접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며 설득하자 과격했던 분위기도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헤어질 때 노조는 윤 회장의 손을 잡았고 다음번 구미공장을 방문했을 때 공장 입구에는 환영 플래카드가 내걸릴 정도였다.
웅진케미칼 인수 뒷이야기를 비롯해 1980년 7명으로 시작한 출판사를 14개 계열사 매출 5조원 기업으로 키워낸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인생 풀스토리가 담긴 자서전이 출간됐다.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리더스북)`는 제목의 자서전은 백과사전 판매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재계 자산 기준 34위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윤 회장 인생과 경영철학을 모두 담았다.
어린 시절 윤 회장의 가정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1945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윤 회장은 "어린 시절 내 꿈은 쌀밥을 실컷 먹는 것이었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4대째 농사를 짓던 우리 집은 논이 조금 있기는 했으나 아홉 형제가 먹기에는 늘 부족한 형편이었다"고 옛일을 회상했다.
윤 회장의 어린 시절 꿈은 은행원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서울에 올라와 하얀 셔츠를 입은 은행원들이 멋져 보여 막연히 꿈꾸었다고 한다. 하지만 윤 회장은 27세 때 세일즈맨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부산 광복동 농협빌딩에 입주해 있던 브리태니커 한국지사에 무작정 찾아간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27만원이나 하던 백과사전 한 세트를 판매하느라 초보 세일즈맨은 수도 없이 퇴짜를 당했다. 하지만 이틀을 굶은 후 연이어 10건의 계약을 성사시킨 윤 회장은 그달 전국 500명 중 최고 계약을 올린 `내셔널 맨`으로 뽑혔고 이듬해에는 미국 본사에서 전 세계 54개국 세일즈맨 중 최고 실적을 올린 이에게 주는 `벤튼상`을 수상했다. 윤 회장은 "남들 다 노는 명절에도 쉬지 않고 세일즈를 했다"며 "세일즈를 하며 얻은 긍정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태도는 기업을 경영하고 인생을 꾸려가는 데 있어 나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윤 회장은 세일즈맨의 경험을 토대로 어린이책을 만드는 회사 웅진싱크빅으로 웅진그룹을 시작했다. 국내 어린이책 대부분이 외국 서적을 모방하던 1980년대 윤 회장은 무려 3년간 제작비 8억원을 들여 36권으로 구성된 `어린이마을`을 출간했고 이 책은 출판계에서 지금까지도 전무후무한 판매 기록을 세웠다.
외환위기 시절 소비시장이 얼어붙었으며 웅진 코웨이 정수기 매출이 절반으로 줄 때 `렌탈과 코디`라는 묘안을 생각해낸 사람도 윤 회장이다.
윤 회장은 "고객에게 걸려온 전화 응대에도 일일이 점수를 매겼다. 목소리의 느낌이나 통화가 연결되기까지의 벨소리 횟수까지 체크했다"며 "제품을 팔아야 한다는 기존 사고에만 머물렀다면 지금 웅진 코웨이 매출은 2000억원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적었다.
렌탈 덕택에 웅진코웨이는 지난해 매출 1조3000억원을 올렸다.
윤 회장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뛰어난 두뇌에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거듭하는 습관에서 나온다고 역설한다.
또 직원들에게 신바람을 불어넣으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일에 대한 욕구는 저절로 생길 것이라는 게 윤 회장 생각이다.
"신이 나서 하는 일은 잘될 수밖에 없다. 신이 나서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일하면 자신이 지닌 모든 능력을 쏟게 되고 그 과정에서 창의력 또한 발휘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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