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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자의 도마일기

평화의 기도

 

 

평화를 위한 기도

얼어붙은 자연에 봄의 입김이 서려 옵니다.
그런데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엔 언제 봄이 옵니까?

공포에 사로잡힌 표정들!
핏기가신 그 창백한 얼굴들!
이 불안에 떠는 겨레를 위해
주여!
진정 당신의 위안과 평화를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빛을 하늘에서 가득히 우리 마음에 내려 주소서.

주님, 진실이 무엇인지, 어디 있는지 깨닫게 하여 주소서.
목숨 다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입니까?
당신 도움 없이는 이 역사의 오밤중에 길을 잃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원에로의 길을 우리에게 밝혀 주소서.

우리들은 당신의 선민 이스라엘은 아닙니다.
그러나 역시 당신의 백성입니다.
가난하고 헐벗은 가운데도 길고 긴 형극의 여정 속에서도
이스라엘에 못지 않게 받은 이 민족의 학정과 그 수모 속에서도,
이 분단의 비운과 전화의 기혹한 시련 속에서도
당신만은 끝내 두려워할 줄 알던 선민이 아니옵니까?

그런데 주님!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각박합니다.
위기의식이, 불안이, 체념이, 허탈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아슬아슬한 권력의 절벽,무섭게 공허한 침묵의 심연
칠흑 같은 불신의 장막 ,이 장막을 벗길 빛은 없습니까?
저 절벽과 심연을 이을 믿음의 다리는 없습니까?

어느 때 불어닥칠지 모를 돌풍이 세차게 일면
절벽에 매달려 있는 돌들이 일제히 심연으로 내려칠 것만 같습니다.

그 강타(强打)가 지열(地熱)을 건드리면
침묵의 심원은 순시에 활화산의 분화구로 바뀌어
맹렬한 불기둥을 솟아 올려 그 절벽을 송두리째 삼키지 않을까

두렵기만 합니다.

그러나 주여!
공포에 질린 얼굴들은 생각뿐입니다.
누구도 그 위험 앞에서 무력합니다.
'생각하는 갈대'는 약합니다.
오관(五官)도 사지(四肢)도 얼어붙었습니다.
이를 녹일 사랑의 불은 없습니까?

주여! 우리는 사실 당신께 은총을 구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눈같이 희다 할 수도,
우리의 얼굴이 천사처럼 맑다 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 영혼은 그 밑바닥까지 죄에 젖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실,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너무나 많이 저질었습니다.
지금도 부정과 불의가 우리 안에 창궐하고 있습니다.
배리(背理)와 역리(逆理)가, 순리와 도리에 앞지르고 있습니다.
우리 손은 깊이 부패되어 있습니다.
우리 발은 깊이 흙탕물에 젖어 있습니다.

그러하오나 주여!
하염없는 참회의 눈물을 머금은 채 우리와 한결같은 소망은

저 맑고 푸른 하늘 높이 당신 어전에까지 날으고 싶사옵니다.

하오니 주여!
당신의 무한하신 자비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당신 은총의 자우(慈雨)를 내리사
우리 모두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잘못을 씻어 주소서.
그리하여 당신 빛으로 우리 마음을 환히 밝혀 주시고
당신 평화의 길이 우리 안에 환희 트이게 하소서.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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