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강남의 한 빌딩 10층 사무실. 휠체어를 탄 한 중년 사내가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아이리버`로 벤처 신화를 일궜던 양덕준 전 레인콤 대표(59ㆍ현 민트패스 대표)다. 그가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것은 지난해 4월 발생한 사고 때문이었다. 2008년 레인콤을 떠나 `민트패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의욕적으로 활동하던 중 갑자기 심근경색이 찾아왔고 이것이 뇌경색으로 이어진 것. 잦은 음주와 하루 2~3갑의 흡연, 과로와 스트레스가 겹친 결과였다. 비록 몸은 불편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강렬했고 활동력 또한 왕성했다. 회사에 나오면 수시로 회의를 하고 직원들을 불러 지시한다고 한다.
이런 양 대표에게 `기업가정신`을 첫 질문으로 던졌더니 "걱정이 앞선다"고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는 "창업 열기가 많이 식어 큰일"이라며 "스스로 틀을 짜고 일하는 맛을 느끼면 설사 구멍가게를 하더라고 성공하게 돼 있는데 왜 굳이 취업에 목을 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기업가정신을 몸소 실천한 벤처인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수출담당 이사였던 그는 1999년 회사를 그만두고 당시 생소했던 MP3플레이어 업체를 만들었고, 자체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 도전했다. 창업과 자체 브랜드 시도 모두 `도박`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대성공을 거뒀다. 2001년부터 MP3플레이어 시장을 주름잡았고 한때는 세계 1위 업체로 등극했다.
하지만 2005년 `아이팟` 셔플이 등장하면서 아이리버 신화는 주춤하기 시작했다. 애플은 그해에만 가격을 30%씩 세 차례나 내리며 공격 마케팅을 펼쳤고,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도 가격 경쟁에 동참했다. 레인콤은 이들의 가격 인하에 대응하기 위해 무리하게 값을 내렸고 마케팅비용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막대한 손해만 입었다. 양 대표는 "남이 만들어놓은 게임의 룰 안에서 경쟁하려 했던 게 패인이었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을 갓 벗어난 레인콤이 세계 굴지의 대기업들과 양적인 경쟁을 해서는 애초에 승산이 없었다는 분석인 셈이다.
그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나만의 룰`을 만들어 경쟁하는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고객이 회사에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한 뒤 자신만이 가진 강점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벤처 1세대로서 `제2의 아이리버 신화`를 꿈꾸는 후배 창업자들에게 양 대표가 들려주고 싶은 조언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는
△창업 성공 확률은 엄청나게 낮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
△남들이 정해놓은 게임의 룰을 탈피할 것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것 등 세 가지를 당부했다.
양 대표는 "창업이 원래 어려운 것이고,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야 창업 이후 찾아오는 어려움에 보다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며 "창업자에게 비즈니스는 애초부터 불공평한 게임이므로 남이 정해놓은 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패 확률이 100%인데도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래도 하겠다`고 답할 수 있을 정도로 본인이 좋아하는,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일을 창업 아이템으로 골라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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