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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저장소

감정 노동(emotional labor)

 

emotional labor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Arlie Hochschild (알리 호흐실드)라고 한다.

 

음식점 종업원이나 대형 마트 점원, 전자제품 수리 센터의 직원이 딱딱한 말씨를 쓰거나 불친절한 태도를 보일 때면 손님은 대번에 "이런 서비스를 받으려고 내가 돈을 내는 줄 알아?"라며 불쾌감을 느낀다.

눈에 보이는 물건뿐 아니라 서비스까지 돈으로 사고파는 곳이 자본주의 시장이라고 하지만,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서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일까?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의 사회학과 교수 앨리 러셀 혹실드의 '감정노동'(이매진 펴냄)은 육체노동(physical labor)은 물론, 정신노동(mental labor)과도 다른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을 짚어본다.

정신노동은 머리나 신경을 써서 제 일을 처리하는 것이지만, 감정노동은 말 그대로 감정과 기분, 느낌까지 조절해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는 일이다

 

물론, 서비스업은 역사상 오랫동안 이어져 왔으나 오늘날 감정노동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조직적으로 설계돼 위로부터 철저히 관리된다. 저자는 이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노동자들에게 감정 조절까지 요구하게 된 배경을 풀이하려한다.

저자는 감정노동이 어떻게 진행되며 노동자를 어떤 상태로 몰아가는지 알아보려 항공기 승무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승무원 입사 면접과 연수 장면을 지켜보고 연구했다.

대부분 승무원이 웃어넘기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미소를 지어야 하고, 승객이 자신을 웨이트리스 취급을 하거나 아무 이유 없이 커피를 자신의 팔에 쏟아부어도 화를 내지는 못한다고 호소했다. 이들이 극한 상황에서도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진심이기 때문이 아니라 회사로부터 '요구받기' 때문이다.

이들은 애초에 입사 면접을 볼 때부터 긍정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을 적극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합격했다. 연수 내용이나 실제 사건이 일어났을 때 회사의 반응 역시 승무원이 승객에 대한 분노를 어떻게 감출 것인지에만 초점을 맞출 뿐 승무원의 화를 돋운 일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저자는 채권 추심원들 사례도 연구하는데, 이들은 승무원과 정반대로 직업상 불친절을 요구받는다. 추심원들은 자신이 상대하는 사람들이 무조건 거짓말을 한다고 전제하고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아야 한다. 회사에서 "화를 더 낼 수는 없나?", "불안감을 조성하라고!"라는 꾸지람을 듣는 것도 예사다.

저자는 감정노동자들이 결국 '자아 재정의'나 '직업과의 자아 분리'를 통해 자신을 지키려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상황을 객관화해 직장에서 '연기하는 자아'가 '진짜 나'는 아니라고 믿고, 직장에서 손님과 자신을 분리한 상태에서 직업적 능력을 보여주려 한다. 그러면서도 냉소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직업상 필요하므로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존감을 지키려 한다.감정노동자들은 이런 '자아 재정의'에 실패하면 계속 상처를 받게 되고, '직업과의 자아 분리'에 성공하더라도 거짓 자아를 유지해야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정신 상태에 빠지게 된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직장인은 더 많은 사람과 얽히게 된다. 서비스업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일하는 현대인은 누구나 어떤 면에서든 감정노동자다. 이 책이 1980년대 처음 나왔는데도 여전히 독자들에게서 공감을 얻는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감정의 상품화'가 이미 퍼질 대로 퍼졌다는 점이다. 누구나 쉽게 "저 사람은 친절해야 해, 그게 직업이니까!"라고 말하며 사람의 감정과 기분을 물건 취급한다.

저자는 "우리는 모두 증인이자 소비자이자 비평가로서 상업화한 감정을 깨닫고 깎아내리는 데 정통하게 됐다"며 "우리가 꾸밈없는 감정에 더 가치를 두는 것은 관리되지 않은 감정이 점점 희소해지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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