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악기 불모지인 대한민국이 세계 현악기 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바로 심로악기에 의해서다. 1989년 ‘바이올린의 대중화’를 목표로 보급형 바이올린의 대량생산에 성공한 심로악기는 세계 35개국에 바이올린을 수출한다. 보급형 바이올린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 이상을 상회한다. 바이올린을 켜는 학생 10명 중 2~3명은 심로악기가 만든 바이올린을 쓴다는 것이다.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심로악기는 1978년 설립된 동해통상에서 출발한다. 심재엽 심로악기 회장은 10여 년간 대우에서 악기 및 기계 수입 전문가로 일했다. 독일 근무 당시에는 한국산 기타를 팔기도 했다.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지점에서 3년 만에 귀국한 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계와 악기를 수입하는 동해통상을 설립했다. 심 회장이 보급형 바이올린을 만들어 팔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1986년. 심 회장은 평소 눈여겨 봐왔던 바이올린의 전문가용과 연습용 사이의 틈새시장을 겨냥했다.
당시 일본 업체인 스즈키가 학생용 바이올린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국내 현실을 보고 “우리 손으로 바이올린을 만들자”고 결심한 것이다. 무턱대고 바이올린을 만들자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10년 동안 기계 설비를 수입해 오면서 목재가공기계를 이용하면 바이올린의 대량생산이 가능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급형 바이올린 시장의 최강자였던 스즈키를 비롯해 학생용 바이올린 제조업체 대부분은 대량생산을 위해 ‘프레스 공법’을 채택하고 있었다. 프레스 공법은 바이올린 몸판의 굴곡을 본뜬 쇠판에 열을 가해 나무를 찍어 제작하는 방식이다.
프레스 공법은 대량생산에는 용이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변형이 일어나는 문제가 있었다. 또 일정하고 좋은 질의 음색도 기대할 수 없었다. 반면 마이스터 공법은 100% 손으로만 만드는 방식이다. 숙련된 장인의 솜씨에 따라 가격이 수백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른다. 300년이 됐어도 여전히 수억원을 호가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장인들의 손을 거치는 수작업 방식으로 생산하는 바이올린은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 통념이다.
심로악기는 보급형이지만 지속적으로 좋은 소리를 내면서 대량생산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했다. 이미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제조업체들과 똑같은 방식으로는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심 회장은 학생용 바이올린 시장을 목표로 하면서도 숙련공이 나무를 깎듯이 기계로 모양을 만드는 전혀 새로운 공법을 구상했다. 가구공장에서 나무를 깎는 공법에 착안, 정교한 굴곡을 기계로 재현하기로 했다. 바이올린을 만들되 마이스터 공법에 대량생산 공정을 접목시킨 것은 이후 심로악기의 시장 공략 성공의 기반이 됐다.
국내에 마땅히 자문할 곳이 없었던 심 회장은 독일의 마이스터를 초청해 제조와 생산에 대한 자문을 구해가며 기계를 제작하고 개조해 갔다. 기계가 읽어 들이는 표준 틀(몰드)만도 나무에서 시작해 철판, 석고, 알루미늄을 거쳐 우레탄에 이르렀다. 바이올린을 깎다 실패한 나무판만도 수천 장이 쌓였다. 기존의 방식으로 바이올린이 완성되기까지 170여 가지 공정이 필요했지만 심로악기는 이를 40여 가지로 줄였다. 정밀도를 요하는 부분은 숙련공의 손을 거치도록 했다. 모양뿐만 아니라 음색도 뛰어난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무려 2년에 걸친 시행착오와 각고의 노력 끝에 심로는 자신의 이름을 단 바이올린을 시장에 내놓았다. 오직 “될 것 같다”는 생각이 1989년 바이올린 대량생산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처음으로 참여한 미국의 악기 박람회에서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바이어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샘플이니 이 정도 품질이 유지되는 것이지 대량생산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설득에 설득을 거듭한 끝에 미국 최대 바이올린 수입상인 UMI의 무스칸토 사장이 심로악기의 강원도 문막공장을 방문하게 됐다. 무스칸토 사장은 반신반의했던 바이올린의 대량생산에 놀라움을 표하며 거래의 물꼬를 텄다. 첫 계약은 무려 5000대. 이에 자신감을 얻은 심로악기는 본격적인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하지만 기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 스즈키는 자신의 자리를 쉽게 내주지 않았다. 당시 해외 마케팅을 책임진 김원정 대표의 끈질긴 설득과 바이올린의 우수한 품질 덕분에 바이어들은 하나둘씩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처음 몇 십 대로 시작한 계약은 몇 백 대로 이어지더니 금세 8000대라는 실적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한창 탄탄대로를 달리던 어느 날 미국으로부터 납품 바이올린 5000대를 모두 반품하겠다는 통보가 날아왔다. 모든 것을 송두리째 날릴 수도 있는 위기였다. 바이올린의 손잡이 중 손가락으로 현을 짚는 지판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신학기를 앞둔 UMI 측은 대목을 놓치게 됐다며 모든 거래를 끊을 태세였다. 다시 만들어 배로 운송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심 회장은 즉시 팀을 편성해 미국으로 보냈다. 현지에서 5000대의 바이올린을 모두 수리할 작정이었다. 이러한 심로악기의 열의에 감격한 무스칸토 사장은 자신의 집을 작업장으로 내주기까지 했다. 심로악기의 직원들은 개학날에 맞춰 5000대의 바이올린을 완벽히 수리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심로 바이올린의 순항이 시작됐다. 최고의 품질에 좋은 가격, 그리고 신뢰까지 얻었기 때문이었다.
중가 바이올린의 대명사인 일본 스즈끼를 제치고 심로악기는 미국 시장 1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이 소문은 유럽과 남미에까지 퍼져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보급형 악기 시장의 대목이라 할 수 있는 학기 초에는 바이어의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잔업이나 특근을 해야 할 정도였다. 심로악기의 국내외 3개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바이올린뿐만이 아니다.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를 생산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만도린을 생산하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심로악기에도 시련과 위기가 찾아왔다. 중국의 저가제품이 바이올린 시장에도 흘러들어오게 되면서 심로악기도 타격을 받게 됐다. 공정 자동화가 이뤄지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심로악기의 바이올린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대적해 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중국산의 위협 앞에 심로악기는 정면승부를 감행했다. 1995년 심로악기는 중국 천진에 공장을 설립한 것이다.
한국의 숙련공들이 각 파트별로 일대일 교육에 들어갔지만 중국 직원들이 만들어낸 바이올린의 불량률이 80%에 이를 정도로 형편없었다. 결국 특단의 조치가 취해졌다. 바로 ‘바이올린 화형식’이라는 충격요법이었다. 모든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불량 바이올린은 불길 속에 던졌다. 이는 직원들이 경각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됐다. 이외에도 전날의 불량률을 체크하고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회의와 부품마다 담당자의 이름을 써넣는 ‘부품 실명제’ 등으로 불량률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중국 공장을 설립한 지 8개월 만에 중국산 바이올린과 대적할 수 있는 ‘안토니오’가 탄생했다. 그래도 중국산 바이올린의 가격은 심로악기가 어찌해 볼 수 없을 정도로 저가였다. 가격만으로는 중국산 바이올린과 경쟁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고 중국산 바이올린은 불량투성이라는 게 금방 드러났다. 저가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던 바이어들은 결국 다시 심로악기로 돌아왔다. 이를 통해 심로 바이올린은 가격 경쟁력뿐만 아니라 품질까지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특히 중국산 저가 바이올린으로 인해 매출이 급감한 호주 시장을 탈환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안토니오를 통해서였다. 김원정 대표는 “안토니오는 가격 대비 가치, 품질 면에서 가장 정직한 악기라는 점이 해외 바이어들에게 적중했다”고 말했다. 거품이 없는 악기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김 대표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중국산 저가 바이올린’이다. 중국산 저가 바이올린과의 일전에서 이미 승리를 거뒀지만 이젠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중국산이 가격 체계를 흩뜨리고, 국산으로 둔갑하면서 시장을 흐리고 있다”며 “무엇보다 이 때문에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것이 안타깝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영이야기(CEO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CEO 연구] 1등 기업의 특징 (0) | 2010.02.22 |
---|---|
[CEO연구] 중국 공략법 (0) | 2010.02.18 |
[CEO연구] 유동성이 부족하면 (0) | 2010.02.16 |
[CEO연구] 리더가 되려면 (0) | 2010.02.10 |
[ CEO연구] SNS의 활용 (0) | 2010.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