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12월 8일,
추운 날씨에도 워싱턴 D.C.를 가로지르는 포토맥 강에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이자 비행가인 랭글리(Samuel Langley) 박사의 역사적인 비행 실험을
보기 위해서였다. 스미소니언 협회의 회장인 랭글리 박사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비행기 개발을 추진했다.
두 달 전에 있었던 첫 실험의 실패로부터 얻은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했다며 성공을 자신했다.
당연히 사람들의 기대감도 부풀어 올랐다.
오전 10시가 되자 비행기가 하우스 보트 위에 설치한 발사대를 미끄러져 출발했다.
하지만 비행기는 포토맥 강에 그대로 추락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말똥가리가 난파되었다'는 말로 미국 과학사의 가장 참담한 실패를 꼬집었고,
뉴욕타임스는 '사람이 하늘을 날기 위해서 앞으로 천 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9일 후 노스캐롤라이나의 키티호크 해변에서 라이트(Wright) 형제가 비행 실험을 시도했다.
12시 정각에 동네 사람 다섯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형인 윌버(Wilbur Wright)가
59초 동안 260미터를 날아가는 동력 비행을 성공시켰다.
랭글리 박사가 실패하고 천 년은 더 걸릴 것 같다는 유인 비행기 개발이 오하이오 데이턴에서
자전거포를 운영하는 무명의 형제들에 의해서 성공한 것이다.
어째서 당대 최고 과학자 랭글리 박사는 실패하고, 자전거포 주인 라이트 형제가 성공했을까?
더욱이 비행 이론을 체계화한 랭글리 박사는 정부 지원으로 17년간이나 비행기 개발에 매진했지만,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띄우는 데 고작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결정적 차이는 비행기 개발을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랭글리 박사는 비행기가 떠서 나는 것이라 생각했고, 라이트 형제는 날다 보면 뜬다고 여겼다.
그래서 랭글리 박사는 뜨는 것(이륙)에 집중하여 가볍고 동력이 센 엔진 개발에 몰두했고,
배 위에서 비행체를 하늘로 쏘아 올렸다. 반면에 라이트 형제는 나는 것(비행)에 집중하여
공중에서 조종이 수월한 기체 설계에 힘쓰면서, 언덕 위에서 바람에 의해 비행기를 날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인류 최초의 비행기 개발은 고도로 불확실한 작업이다.
하늘에서 바람의 방향은 시시각각 바뀐다.
바람의 미묘한 차이에도 비행기는 추락할 수 있다.
라이트 형제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는 자전거처럼
비행기도 조종하지 않으면 하늘에서 안전이란 있을 수 없다고 여겼다.
이론적이지는 않았지만 실험을 하면서 오류를 그때그때 개선해 나갔다.
랭글리 박사는 이론과 계획에 따라 행동했지만 라이트 형제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계획을 바꾸었다.
이것이 라이트 형제가 랭글리 박사를 이긴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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