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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들

낯선 삶, 낯선 세상 20.

 

 

20. <불자량(不自量)>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는 나를 확인하려
매일 습관처럼 거울을 본다.

 

분명하지 않는 가냘픈 기대감
항상 바라던 모습은 없고
익숙함이 오히려 생소한 얼굴

 

순간 거울이 갈라지고
내 생존의 대지가 붕괴한다.

 

무너진 지반의 낯선 균열 위
그 조각들 속엔 갈라진 내가 아닌
작아진 내가 흡사 손오공의 분신인양
여의봉을 흔들고 있다.

 

삼년된 서당개도 읽는 풍월을
철들어 삼십년을 더 살고도 읽지 못한 세상
십년을 고개 숙여 살고도
세치혀에 묻어 나오는 치욕조차

받아 넘기지 못하는 자존

 

습관처럼 살고도 전혀 익숙치 않는 삶
그러고도 거울을 보며 웃어보이는
그 뻔한 얼굴 속에 담긴 생각을
내가 읽을 수 없다.

 

참을 줄 알아야 산다 했던가
살다보면 참을 줄 안다 했던가


참는 것에 무슨 아름다움이 있겠냐만
제비가 물어다준 박씨도
참았기에 꽃을 피웠던 것을 알기에
무딘 나를 참으며 웃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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