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배 생각]
자신의 넋두리를 절대 멀리하라는 시인의 말을 들을 걸 그랬나? 시집을 소설 읽듯 하면 실례라고 누가 말을 하던데, 이 시집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한 주인공이 한 편 한 편의 시에 등장하고 있어 처음을 잡고 끝을 놓을 때까지 소설 읽듯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정도 시라면 직업이 시인이라 할만하다 싶어 부러움도 생기고, 싯구 한줄에 제목 달린 시의 의미가 흡사 돋보기에 햇살 모이듯 하는 기교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세련되거나 시어가 남다르거나 하지도 않은데 그의 자분자분한 말솜시에 자연스럽게 공감이 간다.
고교시절 남학교에 여학생이 오고 여학교에 남학생이 갈 수 있는 유일한 행사가 교내시화전이었다. 졸작이라도 내 것을 내어 볼양하다가 시 잘쓰는 친구에게 하나 얻어 내 것인양 걸어 놓았던 적이 있었다. 속내는 여학생들에게 잘난 체를 하고 싶다는 것과 그것 하나 걸어두고 물고기 낙아채듯 여자 친구 하나 만들어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가끔 물어 오는 여학생에게 내 시인양 설명을 하는 내내 가슴 한 구석에 올라 온 부끄러움이 귓볼을 빨갛게 만드는 경험을 했었다. 그 때 이후로 다시는 이런 동냥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것은 내 이름으로 시를 하나 내는 일은 아마 절대 없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포함한 것이었으리라. 올 해 용기를 내어 시집 한권이라도 내어 볼까 하는 작은 욕심을 손바닥에 올려 놓고 조바심을 내며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이 시집을 읽고 나니 주저되기가 매운 음식 앞에 둔 우리 강아지 꼴이다.
시를 쓰려면 영혼이 깊어야 한다. 아니면 품부한 감정이라도 있어야한다. 그도 아니면 아름다운 말을 할 줄 아는 입술이라도 있어야 한다. 눈과 귀에 걸려드는 무의미한 의미들을 찾는 것은 재주가 아니라 재능인 것 같다. 물기 머금은 호수가의 아침같은 어는 봄날의 정오에 마음은 촉촉착찹해지고 어느새 빈곽이 되어버린 답배갑 때문에 담배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나는 고작 담배 생각이란 말인가....
'서평·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시의 로빈후드> - 박용남 지음/서해 문집 출판 (0) | 2014.08.24 |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What money can't buy) (0) | 2014.07.28 |
[스크랩] [ 인(忍), 때를 기다림 ] (0) | 2014.02.08 |
[스크랩] 학문의 즐거움 (0) | 2014.02.08 |
[스크랩] 경제학 콘서트- 무지해도 좋은가? (0) | 2014.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