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명저라고 하는 책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 책들 중에는 대중에게 알려져 그 명성이 지속적으로 재생산 되는 것이 있는 반면 그 책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만 명저로 남아 있게 되는 책도 많을 것이다. 내가 이것에 대해 단정적인 어투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명저들을 접한 경험이 적고 명저를 알아 볼 안목이 흐린 때문이다. <도시의 로빈후드>라는 제목의 이 책은 그런 명저의 부류에는 가지 못할 책이다. 그가 평생 해온 공부와 맞닿아 있는 생각을 아주 논리 정연하게 풀어 놓은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새로운 개념을 주장한 책도 아니다. 물론 명저의 조건이 반드시 앞의 경우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이 책은 적어도 그 정도의 조건은 충족해야되지 않을까 하는 내 나름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책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이 책은 기존의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도시에 대한 관념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이드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에는 어떤 철학적 심오함이 들어 있지는 않다. 그리고 저자 나름의 탁월하고 냉철한 분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찌보면 지극히 통속적이다. 하지만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의 편익을 위해 공간으로서의 도시. 때론 악의 온상이 되기도 하고 때론 인간 욕망의 공간적 화신이 되기도 하는 도시에서 배제된 인간성을 다시 거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이다. 편익 때문에 행복이 배제된 도시를 다시 보게 만들고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도시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세계의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 하고 있다. 이미 너무 가버린 도시를 되돌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한 실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것이 어렵게 때문에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조용히 웅변하고 있다. 정말 살기 좋은 도시는 결국 사람이 행복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람과 더불어 살 수 있는 환경으로서의 도시라는 것을 이야기 해준다. 나는 이책의 어느 한 페이지에 있는 한 문장 때문에 한 동안 독서를 멈추고 이 책을 서가에 조용히 다시 꼽았었다. 그리고 다시 펼쳤을 때 나는 이 문장에서 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바로 이 문장이다. " 우리 모두의 과업은 단순히 능률적인 도시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환경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콜롬비아의 보고타시의 전 시장을 역임한 엔리케 페냐로사라는 사람이 했던 말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저자가 페냐로사를 이 책에 등장시켜 자신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인간 중심의 미래 도시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 것으로 보았다. 저자의 그런 열망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의 도시에 대한 나의 시선을 거두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 보기 시작했다. 인간이 추구하는 이익을 빌미로 보면 분명 도시는 시골에 비해 비쌀 이유가 있다. 그러나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그럴 이유가 없다. 아스팔트나 시멘트에 가려져 숨도 못쉬는 어쩌면 고통스러운 그 땅이 한포기 풀에서 부터 아름드리 나무에 이르기까지 자유를 숨쉴 수 있는 시골의 땅에 비해 더 많은 가치를 부여 받을 수 있는 단 한가지 이유는 자본의 논리 밖에 없다. 인간이 돈의 형태가 아닌 부를 축적하는 다른 수단으로서 땅을 이용했기 때문에 같은 땅이지만 아주 다른 교환가치의 비율이 만들어 진 것이다.
길은 태생적으로 인간을 위해 만들어 진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길은 그렇지 않다. 자동차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편익을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가 그 길의 주인이 되고 만 것이다. 논리적으로 따져 보아 사람이 자동차를 운전한다고 해서 사람이 그 길의 주인이다 라고 말 할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자동차는 도구이다.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은 그 도구를 오용하는 사람 때문이다. 하지만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만약 도로가 자동차가 다니기에 편리한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사람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것이 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도로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이 처럼 빈번히 일어나는 현재의 상황이 만들어 졌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자. 아마도 아닐 것이라 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그렇다면 결국 사람이 도로를 이렇게 만든 것은 자동차 때문이고 그런 도로 위에서 자동차란 도구에 인간은 자기 통제권을 내어준 꼴이므로 결국 도로의 주인은 자동차이다.결국 사람이 위협을 느끼지 않는 도로를 만들려면 자동차에 내어준 인간의 주권을 회복하는 길 밖에 없지 않을까? 그리고 그 주권 회복의 길은 사람의 생각이 바뀌는 것이 기점이고 그 생각이 반영되어 공간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종점일 것이다. 도로의 위협은 지금도 사람의 생각이 바뀌면 많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왜 맹모가 세 번의 이사를 했겠는가. 그만큼 환경이 중요하다. 지금의 환경을 그대로 두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 하고 생각이 바뀌지 않는 사람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어딘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지울 수 없지 않은가?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어디에서건 쉽게 볼 수 있는 '살기 좋은 도시'라는 표어가 어쩌면 효율과 편익을 강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표에에 행복을 대입시켜 본다. '행복한 도시' '사람이 행복한 도시' '살면서 행복을 경험하는 도시라는 자연' 등등... 이런 말들이 표어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일기장에서 발견되는 그런 도시를 한 번 보고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도시의 텃밭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는 기력이 쇠하시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집 주면에 빈땅이 있으면 무엇인가를 심으셨다. 그것은 할머니의 유일한 직업 경력이라고 볼 수 있는 농사일이 손에 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별 다른 낙이 없는 노년 생활에 유일한 재미였고 시간을 보내는 오락이었다. 요즘 노인 인구가 많아 졌다고 하지 않는가.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다. 노인들에게 텃밭을 제공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감과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동네 노인들을 위한 공동 텃밭 그리고 그 옆에 정자만 하나 있으면 우리 노인들의 삶이 훨씬 윤택해 지지 않을까? 또 아이들에게 자연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은 부무도 많은데 그런 텃밭에서 노인과 젊은이와 아이들이 함께 모인다면 자연스레 대화가 많아 질 것이고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경험이 전수될 것이다. 그리고 자연이 주는 행복을 도시에서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내 손으로 기른 건강한 먹거리가 주는 행복이라는 덤과 함께 말이다.
갑자기 할머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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