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 ]
- 김수영-
부정한 마음아
밤이 밤의 창을 때리는구나
너는 이런 밤을 무수한 거부 속에 헛되이 보냈구나
또 지금 헛되이 보내고 있구나
하늘 아래 비치는 별이 아깝구나
사랑이여
무된 밤에는 무된 사람을 축복하자.
우리 현대 시문학을 열었던 많은 이들이 참 일찍도 세상을 떠났었다. 시인 김수영, 그 역시 그랬다. 비록 요절한 이들에 비해서는 오래살았지만 지천명을 살지 못한 시인이다. 그리고 우리 현대사를 몸으로 직접 아프게 살다간 사람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생활도 했었고 한일협정 반대시위에 참가하고 성명도 발표하는 등 지식인이라면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믿었고 행동했던 사람이다.그런 그의 삶이 버스에 부딪히는 사고로 마무리 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유신의 고비에 무슨 일을 당했을 법한 사람이다. 이 시를 보면 그런 그도 세상을 마주하고 혼자 있을 때면 스스로 무기력하다 느꼈던 것일까. 밤이 밤의 창을 때리는 이유는 불 끄고 자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이미 보낸 헛된 불면의 밤들이 이명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탓이다. 이 밤에 떠오르는 그런 과거에 대한 회한 때문에 또 헛된 밤을 보내고 있는 자신이 참 무능해 보인다. 사실 무능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보이고 아직 도처를 떠도는 전쟁의 상흔이 스민 울음들이 밤을 도와 창을 때리는 것에 무감각할 수가 없어서다. 시인이기에 가지는 예민한 감수성은 시인이라는 직함의 나약함 때문에 아마 천형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런 자신에게 밤의 별조차 아깝다 말하는 심정, 그런 자조는 어쩌면 먹물들의 치장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을런지 모른다. 무디지 못한 자신이 무딘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축복한다는 것, 그것이 교만인지도 안다. 무딘 밤의 주인이 무딘이들이라는 것이 화가 나면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스스로 부정한 마음이라 탓한다. 오늘 밤은 김수영의 밤이 내 밤의 창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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