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바람 소리가 제법 거세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겨울이라 시위하는 건 이 놈뿐일 게다.
뭐가 좋은지 헤프게 틈을 벌린 유리창을 닫으니 바람은 헐거워진 TV 선을 흔들어 유리창을
때린다. 아 하늘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구나! 뭔가 이런 신성한 기운에 화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옷을 챙겨 입고 산으로 향했다.
등산로의 나무가 바람을 잡아 줄 줄 알았는데 시위꾼이 더 늘었다.
물러가라! 집에 가라! 빨리 가라! 뭐 이렇게 들린다.
녀석들 여의도나 청와대 앞에서 좀 열심히 해보지...
마침 귀를 가릴 모자가 없다.
어쩔까...
에라이! 내일부터 잘 준비해서 오지 뭐~
조금 오른 산을 내려오는데 마주 오는 부지런한 아주머니, 이 새벽에 벌써 산에 올랐다
내려오는 줄 알고 약간의 존경을 담은 가벼운 목례를 하고 지난다.
춥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짐짓 더 큰 목소리로 화답했다. 나는 뻔대다.
일찍 집을 나왔으니 뭐라도 하고 가야겠다 싶어 목욕탕에 들린다.
볼품없는 몸이지만 거울 앞에 서서 배에 힘을 한 번 줘본다. 올해가 병신년이지?
샤워를 하면서 아직도 머리카락이 돋아나지 않는 부위를 본다.
뭐 이정도 쯤이야! 이 나이에 이 정도면 다행이지... 자위는 벌거벗고 하는 게 아닌데...
약간 미지근한 욕탕을 뜨거운 물로 채운다.
잠시 뒤 초로의 민머리 아저씨가 탕에 들어오려다 뜨거운지 다른 탕으로 간다.
독탕이다. 혼자 즐기는 기쁨!
잠시 후 칠순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아저씨 들어와서 뜨거운 물을 더 튼다.
내가 나왔다. 벌겋게 익은 몸을 보니 억울하다.
독탕을 빼앗긴 몸에도 김이 난다. 제법 흥건한 땀이 흐른다.
이 맛이다, 내가 산에 오르려 했던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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