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응답]
기도에 대해 응답은 두가지다.
기도한대로 응답하시는 경우 , 기도한 대로 응답하시지 않는 경우.
믿음에 따라 반응이 틀리겠지만 둘다 응답으로 받아들인다.
기도하는 사람으로서는 모순을 받아들이는 셈이된다.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하심은 우리의 생각과 시간과 공간의 범위를 넘어서 있기 때문에
사실 이 모순 투성이의 세상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그분의 의지를 발견하기란 쉽지않다.
그저 한마디 말씀이면 다 되실 것을 왜 이리 '나(자아)'를 살려두려서 번민하게하고
죄로 인해 고민하게 하고 또 삶에 욕심을 가지게 하시는지... 정말 모를일이지만...
그의 모습을 본받아 그의 의지대로 우리를 지었다는 것에서 유추해보면
그 분은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살기를 원하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를 닮은 우리의 의지는 무엇일까?
선한 의지, 승리의 의지인가?
목회자들은 도덕적으로 착하게 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협박한다.
도덕으로 포장된 죄악을 경시하지 말라는 이야기로도 들을 수 있지만
도덕적으로 아무리 선해도 지옥간다니... 사람들이 안믿을 수 밖에...
도덕을 문화의 유산이 아닌 하나님의 정하신 삶의 계율이라고 바꾸면,
도덕적으로 선하면 지옥 절대안간다.
도덕적 선은 선한 의지에 대한 신념이 없이는 불가능하고 ,
선한 의지의 표본으로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었음을 상기한다면
그분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도덕적 선의 삶인 것이다.
그래도 도덕적으로 완벽할 수 없다.
그 때는 용서를 구할 곳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죽음은 용서가 아니다.
또한 죽음은 도덕적 선을 위한 용기 있는 행동도 아니다.
도덕적 선의 결과가 죽음이라면 도덕은 결국 사람을 죽이는 것이 된다.
기독 신앙은 사람을 죽이는 신앙이 아니라 살리는 신앙이다.
사람을 사람답게하는것,
그것은 사랑이다. 조건없이 아낌없이 주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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