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과 소망]
기독교인이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나는 것은 죽음에 대한 소망이다.
죽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이냐고? 그건 아닌 것 같다.
죽을 병에 걸리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애원을 한다.
그렇다면 살고 싶어 안달하는 것인가?
그것 또한 정답은 아닌것 같다.
기독교의 죽음에 대한 정의는 죄의 삯이다.
죄 때문에 죽기 때문에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한다.
죄를 사하여 주신 확신만 서면 죽든 살든 별문제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기도하는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에서 사람의 목숨은 소명이 있는 한 이 세상에 존재한다.
죽음은 이 세상 소명의 다함이거나 소멸인 것이다.
그런데 이 소명에 대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모르고 살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원초적인 소명은 행복하라는 것이고 그리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소명은 이렇듯 단순하다.
그런데 이 단순한 소명에도 사람들은 각기 다르게 반응한다.
주어진 소명을 위해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
내가 원하는 삶을 통해 소명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주께 영광돌리는 주체에 내가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 같다.
그래서 소명보다는 소망이 먼저인 것이 대부분의 기독교인의 모습이 아닐까?
그나마... 예수 믿는 사람으로써 남에게 피해를 주지않고 사는 것도 어딘가? 라는 반문으로
자신의 신앙을 변명하는 사람도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죄인이 분명하다.
성경에서 금하는 많은 죄를 지금도 짓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그 죄로 인해 내 소망이 점염되더라도 내 제대로 소명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하는 생각...
이것 역시 분리할 수 없는 하나로된 삶이기에 부질없는 소망임을 안다.
그리고 또 하나,
죽음을 기독교인들은 하나의 믿음의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죽음의 순간에 기적을 체험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는 간증들이 많다.
이런 일들이 사실로 존재하기 때문에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죽음을 두고 도박을 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죽음은 행복하게 살다죽거나 소명을 위해 죽거나이다.
둘다 뿌리는 믿음이다. 그분이 나를 만드셨다는 믿음.
그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부활과 영생의 믿음도 얻게된다.
그래서 죽어도 죽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에 대해 겁먹지는 않는다.
그래서 소망있는 자의 주검은 그렇지 않은 자의 주검에 비해
그 마지막 표정이 온화하게 보인다고들 한다.
'초신자의 도마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앙에 대한 자문자답7 (0) | 2007.07.25 |
---|---|
신앙에 대한 자문자답6 (0) | 2007.07.25 |
신앙에 대한 자문자답4 (0) | 2007.07.25 |
신앙에 대한 자문자답3 (0) | 2007.07.25 |
신앙에 대한 자문자답2 (0) | 2007.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