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ifesto(매니페스토)

 

Manifesto는 원칙에 근거한 구체적 공약(公約)

요즘 한국 정치계에 매니페스토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영국과 일본에서 정치가들이 선거에 나올 때 구체적인 약속을 내걸게 하는 것이었다. 5월 31일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후보자들이 실현가능하고 구체적인 공약을 내걸게 하고, 이를 기준으로 유권자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하며, 선거 이후에도 과연 이 공약을 제대로 실천하는지 검증하자는 운동으로, 언론과 학계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각 정당 역시 적극적으로 이 운동에 동참하기로 하고 있다. 이 단어의 의미를 한번 살펴보자.   Manifesto는 앞부분의 ‘mani-’와 뒷부분의 ‘festo’로 이루어져 있다. ‘mani-’는 ‘손’을 의미하는 라틴어 manus에서 유래한다. 이 어근을 공유하는 영어단어로는 Manual(손의, 손으로 하는), Manufacture(제작, 생산) 등이 있다. 뒷부분의 ‘-festo’는 ‘잡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동사 ferstos의 과거분사형으로, ‘잡힌’ ‘붙잡힌’의 뜻이다. 영어단어 Infect(감염시키다, 영향을 주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맨 끝에 ‘-o’를 붙인 것은 이탈리아풍이 나도록 이탈리아어 명사형 어미를 멋스럽게 차용한 것이다. 프랑스어, 독어, 러시아어 등에서는 ‘-o’를 붙이지 않고 각각 Manifeste, Manifest, Манифест라고 쓴다.   이와 같이 어원적으로 이 단어는 ‘손에 잡히는’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분명하고 명백하고 구체적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말에도 ‘손에 잡히는’ 혹은 ‘손에 잡힐 듯한’이란 표현이 있는 것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무엇인가를 손에 잡고 그 감촉을 느끼고 무게를 느끼면서 구체적이고 분명한 어떤 것을 느끼는 모양이다. 일본어에도 동일한 표현이 있으니, 이 표현이 옛날에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간 것인지, 아니면 일제시대 때 일본에서 한반도로 넘어온 것인지도 한번 조사해 볼 만하다. 이렇게 형용사로 쓰이던 이 단어는 중세 이후, 군주나 영주 혹은 교회 지도자가 발표하는 ‘성명’ ‘포고문’ ‘선언’ 등을 의미하게 되었고 근·현대로 들어와서는 정당이나 사회운동단체 혹은 예술그룹이 자신의 목적이나 행동방침 등을 논술하여 대중에게 널리 동참을 촉구하는 문장을 지칭하게 되었다. 아마도 제일 유명한 것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8년 발표한 The Communist Manifesto(공산당 선언)이다. 또 언급할 만한 것으로는 1909년의 Manifeste du futurisme(퓨처리즘 선언), 1924년의 Manifeste du surrealisme(초현실주의 선언) 등이 있다. 하지만 역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경우는 정치적 용법으로, 1900년대 이후 영국의 노동당과 보수당을 비롯한 정당들은 매번 총선거 때가 되면 정강(政綱)으로 Manifesto를 꾸준히 발표해 오고 있었다. 미국 정당들이 Platform(정강)을 발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분명하다’라는 뜻의 영어단어에는 evident, obvious 등이 있는데, 이런 단어들과 manifest는 어떻게 다를까? 이 단어들은 주로 시각적으로 확실하다는 뜻이지만, manifest는 ‘보이지 않는 내면이 겉으로 드러나서 구체화되었다’는 뉘앙스가 있다. 구현(具現)이고 현현(顯現)이며 표명(表明)인 것이다. 중세부터 군주들이 사용했고, 이제는 각 정당이나 예술단체가 그러하듯이 자신들이 갖고 있는 어떤 원칙이나 원리, 혹은 믿음체계들을 이 세상에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 행동노선과 방침을 천명(闡明)한 것을 Manifesto라고 불렀던 것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것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원칙과 믿음체계가 바탕에 깔린 공약이라야 Manifesto라는 명칭이 어울릴 것이다. ‘도로를 놓겠다’ ‘세금을 줄이겠다’ ‘사업을 벌이겠다’는 등의 구체적 약속도 좋지만, 입후보자 자신의 원칙과 믿음체계를 먼저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양현수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책임연구원·정치학 박사(pete4g2003@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