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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자의 도마일기

신앙과 종교 사이, 종교와 이단 사이

 

믿음과 믿음의 강요에 대해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는 믿음을 강요한다고 생각하는데 성경에 보면 '믿음도 은혜라'고 예수님이 직접 이야기했다고 적혀있습니다. 전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지만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은 신의 일입니다. 유일신에 대한 믿음은 다른 신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종교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신앙과 종교를 구분합니다. 기독교인(신앙인)의 믿음은 바로 유일신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강요로 받아들여지는 '전도'라는 것은 ' 네가 선 곳에서 땅 끝까지 전하라!"라고 한 예수님이 부여한 기독교인의 임무요 사명에 대한 행위입니다. 믿음을 전하는 것이지 강요하는 것이 아닌데 이 부분에 있어서 기독교인들도 오해하는 부분이 있어 마찰이 발생되기도 합니다

 

믿음을 전하고 기독교인으로서 예수의 가르침인 사랑과 인내와 화평 등을 몸소 행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성경에는 우리에겐 믿음을 증거하는 임무가 주어졌을 뿐이고 믿음의 역사는 성령이 직접 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기도를 통해 성령의 역사를 간구합니다.

 

그러나 이단이란 것은 예수를 사칭한 인간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석가세존이 깨달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 또한 매우 훌륭합니다. 개인적인 신념이지만 저는 하나님이 석가세존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불교에 있어서도 깨닫지 못한 자가 깨달은 자를 빌어 혹세무민하는 것을 우리는 경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물과 불이 상징적으로 많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이것들을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징벌적 수단으로만 생각하지만, 그 속성은 자기를 불사르고 정화하며, 또 인간의 완악함을 녹여내는 상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약을 보고 기독교를 비판합니다. 하지만 구약은 악과의 싸움을 강조합니다.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 오해되고 종교적 형식주의로 흐르니까 예수님이 등장하게 되고 그를 통해 악과의 싸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시된 것이 바로 신약입니다. 신약에 제시된 방법론의 줄기는 굳건한 믿음과 자기 부정과 자기 희생과 사랑의 실천입니다. 방법론이 이렇다 보니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역사적 인과 응보일 수도 있으나 기독교인 혹은 기독교의 전형에 대한 세상의 잣대는 성경보다 더 엄격한 경우가 많은 것이 기독교인으로서의 삶과 행동양식이 더 어려워 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지만 대립의 입장을 취하기 보다 화합의 입장을 취해보면 사람 또는 종교라 할지라도 닮아 있는 부분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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