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읽기

처용문화제를 둘러싼 종교 논란

 

제가 기독교인이라서 보다는 처용 문화제가 생긴 근거를 알고 있는 터라

한마디 해야겠다 싶었는데... 마침 제 생각과 같은 글이 있어 옮겨봅니다.

 

처용문화제, 왜 문제가 되는가?
- 송재소 선생의 ‘처용과 기독교’(다산포럼 402)에 대한 반론

김 진(울산대 철학과 교수)

송선생의 글은 기독교인도 아니고 불교인도 아닌 타자적 관점에서 객관성을 담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가 한문학자이기 때문이다.

지난 17년간 울산에서 논란이 되어 왔던 처용문화제의 정체성 시비가 최근에 울산 기독교계 인사들의 개입으로 종교 갈등 양상으로 비약됨으로써 중앙 언론에서도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송선생뿐만 아니라 손석희의 시선집중, 그리고 한 불교계 인사의 기독교 비판 기사 역시 울산에서의 처용 논란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나 배려 없이 ‘처용 대 기독교’의 대결 구도만으로 몰아감으로써 기독교는 배타적이고 반문화적이라는 그릇된 메시지를 일반에게 심어줄 우려가 크다. 울산에서의 처용 논란을 이명박 대통령과 연관시키거나 불교계의 종교 편향 주장에 대한 반발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지나친 비약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우선 처용문화제는 송선생이 알고 있는 것처럼 42년 전통의 축제가 아니다. 1962년은 공업도시로의 새로운 도약을 세계만방에 알린 울산의 시대정신을 가름하는 분수령이고, 이를 영구히 기념하기 위하여 울산시민들은 ‘울산공업축제’를 대표축제로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1991년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당시 문화부장관(문학 전공)을 내세운 일단의 문학교수들이 25년 전통의 울산공업축제를 폐지하고, 울산시 남구 문화원에서 지내던 ‘처용제의’(處容祭儀)를 ‘처용문화제’로 승격 출범시켰다. 시민적 동의나 이해를 충분히 구하지 않고 전격적으로 처리한 것이다.

그 후 지난 17년 동안 처용문화제는 울산시의 대표축제로 행세해 왔지만 숱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논란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그 하나는 처용문화제의 명칭 자체가 외설적인 설화에 근거하고 있어서 아이들까지 참여하는 대표축제로서 부적합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처용문화제가 문화축제를 지향하면서도 그에 걸맞은 축제 내용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처용이 뒷전으로 밀리고 월드 뮤직 페스티벌 중심으로 치러지는 것조차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17년 동안 울산 지역신문에서 수많은 오피니언 리더들은 처용문화제가 울산의 대표축제로서 부적합할 뿐만 아니라 부실하다고 비판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문제는 처용설화의 정신이 세인들에게 알려진 것처럼 ‘관용’과 ‘화합’보다는 ‘불륜’과 ‘야합’의 성격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처용부인과 역신의 통간 현장을 목격하고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처용의 태도에서 그의 부인을 범한 사람이 왕이나 권력실세였다고 쉽게 추정할 수 있다. 골품제를 근간으로 하는 신라왕실에는 색공(色供)으로 불리는 여성들이 있었으며, 헌강왕이 처용에게 내린 미인도 그 일원이었을 것이다. 또한 최근 처용설화의 역사학적 연구에서는 처용이 자신의 부인을 이용하여 권력실세와 야합하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으며, 처용사건의 신격화 역시 신라 말기 박씨왕가의 정권 창출과 관련이 있다는 논문까지 나왔다. 따라서 처용정신이 관용이라는 것은 이제 낡은 이론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해 울산의 정신문화를 걱정하는 뜻있는 인사들이 울산문화연대를 설립하고, 가장 우선적으로 처용문화제 논란을 종식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울산 지역의 문화인들은 처용문화제가 시민 대표축제의 형태보다는 전문적인 문화축제로 특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피력해왔다. 그런데 처용을 ‘신령스러운 존재’로 믿고 있는 모 인사는 일단의 문학교수들을 처용 이데올로그로 내세워 처용문화제의 위상을 고수하려고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특정 문중세력까지 끌어들여 폭력적인 사태를 유발하는 불미스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송선생이 한문학자이므로 객관적이지 않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문학적 가치만으로 대표축제를 특정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송선생은 처용문화제를 종교행사로 볼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런 측면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처용 전승이 무속신앙의 형태로 전개되어 온 것은 반박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일연스님조차도 처용 사건을 벽사진경(僻邪進慶)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처용가는 정형화된 무가(巫歌)로 알려져 있다. 처용무 등이 궁중나례에 활용된 것도 악귀를 물리치려는 종교적인 의도에서 비롯되었으며, 처용은 지금도 종교제의의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학계의 주류적 해석은 처용을 무당(巫堂)으로 보고 있으며, 학생들이 가장 많이 본다는 금성출판사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무당으로 규정되어 있다. 중요한 무가마다 처용신이 오르내리고 있으며, 지금도 울산지역의 구석구석에는 처용신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지난 17년 동안 처용문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처용제의’(處容祭儀)에서 울산시장은 초헌관(初獻官), 처용추진위원장은 아헌관(亞獻官)으로 제례(祭禮)를 주관해 왔다. 금년부터 그 처용제의에 시장과 시의회 의장이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기독교계의 반발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비록 ‘처용제의’를 ‘처용고유’(處容告由)로 바꾸었지만, 처용문화제의 종교적 함의는 이처럼 명백하다. 처용문화제의 시작을 누구에게 알리는가? 천지신명에게 알린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처용신에게 알리는 것이다.

울산의 기독교계만이 대표축제의 개편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기독교계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최근 처용정신을 신격화하여 울산의 대표적인 정신문화로 정립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반발이다. 송선생이 비판한 것처럼 일부 기독교 신자들이 단군상을 훼손하여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법정에서 이미 시비가 가려진 사항이다. 특정 종교단체가 학교 등 공공기관에 단군상을 대대적으로 설치하려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하였던 것이다. 울산시민의 공공세비로 운영하는 대표축제가 특정 종교의 색채를 띠고 있는 한 분란은 필연적이다.

울산에는 처용보다 더 밝고 아름다운 전통가치들이 많다. 세계적 문화유산인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이 있고, 쇠부리와 고래에 얽힌 이야기들이 있으며, 울산은 만고충절의 표상 박제상과 독립운동가 박상진의 고장이기도 하다. 또한 울산은 정주영과 구본모가 대기업을 일구었던 경제신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런 밝고 건전한 가치들이야말로 울산을 대표할 수 있는 정신으로 승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처용 관련 행사들을 전문적인 문화예술 축제로 특성화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 것이다.
 

글쓴이 / 김진
· 울산대학교 철학과 교수(종교철학)
· 저서: "칸트와 불교", “처용설화의 해석학”, “처용논쟁” 외 40여권
· 울산문화연대(http://uca.or.kr) 상임대표

 

+++++++++++++++++++++++++++++++++++++++++++ 

<  처용과 기독교 >

      
이명박 정부 출범이래 불교 교단은 정부에 대하여 줄곧 불만을 표시해왔다. 이 대통령이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불교에 대하여 편향적이라는 것이 불교 측의 불만이었다. 사실 2004년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수도 서울을 하느님에게 봉헌한다”는 기도문으로부터 갈등은 시작되었다. 그 후, 주대준 청와대 경호처 차장이 “모든 정부 부처의 복음화가 나의 꿈”이라고 한 발언, 추부길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사탄의 무리”라고 매도한 일 등이 겹치면서 불교계의 불만은 수위가 높아갔다.

급기야 조계종 총무원장이 탄 차량의 트렁크를 수색한 사건을 계기로 불만이 폭발했다. 불교계는 대대적인 집회를 열고 대통령 사과, 어청수 경찰청장 문책, 공직자 종교편향 금지 입법 등을 요구하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드디어 대통령이 사과하고, 공무원의 직무상 종교차별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공무원 복무규정 제4조 2항’을 신설하기에 이르렀다.

왜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번에는 이 ‘복무규정 4조 2항’을 기독교 측에서 역이용하고 나섰다. 41년 째 거행되고 있는 울산의 ‘처용문화제’를 문제 삼은 것이다. 울산시 기독교연합회와 울산시 교회협의회, 울산시 성시화(聖市化) 운동본부, 울산문화연대 등 4개 단체가 “울산시가 처용문화제에 세금을 지원함으로써 무당인 처용을 믿고 따르는 특정 종교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며 지원 중단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처용문화제 지원 관련 조례를 폐지하지 않거나 다른 명칭으로 변경하지 않으면 공무원 복무규정 위반으로 울산시 관계자를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나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불교인도 아니다. 그러나 누가 어떤 종교를 믿든 서로의 종교를 인정해주는 아량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날 불교사찰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운 승려도 있었다. 또 부처님오신 날 사찰을 방문하여 축하해준 가톨릭 신부도 있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왜 유독 개신교만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가?

시골 학교 교정에 세워둔 단군상(檀君像)을 훼손한 일이 있었고, 동네 입구에 서있는 천하대장군을 도끼로 찍는 일도 있었다.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일부 몰지각한 개인의 소행으로 보아 넘길 수 있지만 처용문화제의 경우는 다르다. 개인이 아니라 기독교 단체가 공식적으로 항의한 것이다.

처용문화제를 ‘특정종교활동’이라 할 수 있나?


처용문화제를 ‘특정 종교 활동’으로 보는 시각 자체에 문제가 있다. 신라 향가인 「처용가」에서 유래된 처용희(處容戱)는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궁중과 민간에서 널리 행해져온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문화이다. 처용과 처용가에 대해서는 이설(異說)이 많지만, 아내를 빼앗긴 사내의 원한과 슬픔을 춤과 노래로 승화시켜 역신(疫神)을 감동시킨다는 내용의 처용희를 ‘특정 종교 활동’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41년간이나 지속되어온 처용문화제를 ‘공무원 복무규정’에 따라 고발하겠다는 것은 얼핏 불교계로부터 받아온 그동안의 시달림을 엉뚱한 대상에게 앙갚음 한다는 인상마저 준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 헌강왕이 동해 용왕의 아들인 처용을 만난 곳이 지금의 울산시 남구 개운포이다. 그 후 그곳에 있는 바위를 처용암이라 이름하고 이를 울산의 상징으로 삼아 해마다 처용문화제를 개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처용설화의 발원지인 울산에서 처용문화제를 개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더구나 처용가와 처용설화는 국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학유산이다. 그런데도 기독교 측에서 이를 트집 잡고 나선 연유를 이해할 수 없다.

 

글쓴이 / 송재소
· 한문학자
· 前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 저 서 : <다산시선>
            <다산시연구>
            <신채호 소설선-꿈하늘>
            <한시미학과 역사적 진실> 등

 

'시사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교과서' 保-革 뜨거운 舌戰>  (0) 2008.10.27
침뜸 논란,집단 이기주의와 선한 의도의 싸움  (0) 2008.10.27
2008 금융위기의 증상들  (0) 2008.10.27
YTN 사태  (0) 2008.10.27
한국의 언론 자유도  (0) 2008.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