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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잡생각들

운명의 여신이 내 편이 될 때까지

 

[ 걱정과 희망 ]

어떤 이가 말하기를 사람은 태어날 때는 무의식 중에 태어나고 죽을 때는 의식 중에 죽는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흡연을 할 때 괴로워하는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본 뒤로는 아기도 의식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하게 되었지만,여하튼 세상에 대한 의식은  죽는 자가 태어나는 자에 비해 더

또렷하고 강할 것이다.

삶에 대한 의식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나간 일에 대한 자책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도 이런 의식과 관련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을 의식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 때문이다.
산 사람 입장에서 보면 죽은 자의 부동(不動)은 단절과 종말을 의미한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그런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긍정적 의식 즉 희망 또는 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 희망으로 본다는 것을 내가 믿는 신앙과 연관해서
예수쟁이의 이야기라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우리 민족의 정서에 뿌리 박힌 의식이다.
죽음을 삶을 떠난 새로운 삶으로 인식하는 것은  이승 저승을 구분하는 말에서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조문을 가서 "저 세상에서는..."하면서 망자의 평안한 내세를 축원한다.

 

이런 생각은 미국처럼 공간에 집착하는 사회(place bound society)에서 보다
우리 민족같은 시간에 집착하는 사회(Time bounded societ)에서 대부분 공유되는 현상이다.
우리 민족은 시간을 흘러가는 강물이나 순서가 있는 선형적임 움직임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함께 살아 가는 관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불가의 업의 개념을 흔히 시간의 회귀 현상으로 이해할지 모르지만

이는 분명 순서를 가진 선형적인 시간 인식이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다만 변화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는 것은 한 때를 정하고 다른 한 때를 정하여서 무엇인가가 변한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변화를 만든 時와 時의 사이(間)에 생각으로 무엇인가를 채워 넣어

시간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은 유한하게 주어진 시간이라기 보다는 변화이며,
변화에 대한 인식 혹은 의식이 우리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삶은 변화이며 변화가 곧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변화를 시간의 관념의 연장선에서 하나의 성향으로 일관되는 것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그렇지 않다. 그것은 과정이다. 변화의 과정 말이다.

 

과정이란 것은 끝이 미정인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의 의식이 변화의 끝을 무엇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변화는 걱정 혹은 희망의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걱정과 희망은 유시유종,무시 무종의 원리에 따라 삶의 과정에서
묶임과 풀어짐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일 뿐이다.
다만 삶이 속도나 양의 경주가 아닌 방향과 과정의 경주이기 때문에
우리가 미래에 대해 갖는 걱정과 희망은 결국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다른 변화로 귀착된다.

 

항상 살면서 우리가 아는 바른 방향에 대해 "실천은 왜 이다지 힘든가?" 라는 질문을 종종한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의 그런 질문에 대해 

과연 내가 삶에 대한 태도를 정말 일관된 방향으로 가지고 있는지,

그 방향을 설정한 것에 혹시 자신을 갉아 먹는 쓴뿌리가 없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보라는 답을 나에게 준다.반성문 쓰듯 말이다.

 

나는 종종 스스로 의도한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하는 것을 자책하고는 한다.
그러나다 보면 자신의 게으름과 무능력이 침소붕대해서 스스로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슴한 구석을 헤집어 보면 갈무리된 부정적인 자기 인식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안되~"  "나는 왜 이렇게 안풀리지?"라는 패배주의가
나의 성공과 희망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우리가 의도하는 변화는 항상 장애라는 벽 뒤에 숨어있다고 마지막 강의를 했던
그 미국인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적응해야할 변화와 만들어야할 변화를 잘 구분하고 때에 맞춰 잘 대응한다면
(이것은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일 것이다. 그저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사는 것일테니까)
우리는 삶의 조화를 얻게 될 것이다.

 

<조화>라는 말, 정말 조화로운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덕목에 조화를 대입하여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
심지어 부정적인 덕목조차도 조화를 대입해서 어울릴 정도면 긍정적인 것이나
적어도 받아들여 질수 있는 개성 정도로 변하게 되니 말이다. 조화가 조화를 부리는 것이다.

 

조화는 균형이라는 단어를 흔히 떠올리게 하지만 나는 적당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다.
하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적당'이 아닌 당연한 곳에 딱 들어맞는 '적당'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적당한 자책과 걱정은 언제나 희망을 향한 적당한 긴장이 아닐까?

 

우린 때로 슈퍼맨이되고 싶다. 그 순간은 잘하고 싶은데 잘못하고 있는 자신 또는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해내고 싶어하는 자신의 열망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런 슈퍼맨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어떤 이가 그런 사람 처럼 보인다면 그는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한 사람이다.
그러니 어떤 일이라도 몰아서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렇게 되기 까지 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시간을 활용하는 존재이지 뛰어넘는 존재가 아니지 않는가?

원하고 필요한 것들은 언제나 시간을 요구하는 법입니다.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살자. 그리고 자기를 끝까지 믿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정말 행동으로 사랑해야 한다.
나도 실천이 나를 사랑하는 행동이 잘 되지 않지만
나는 사를 사랑하는 것이 잘 될 때까지 나를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다. 내 삶 그 자체를 믿고 사랑해보자.
운명의 여신이 내 편이 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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