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탐대실(小貪大失)의 출처
심 경 호(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1.
KBS 라디오에서 ‘시사고전’을 담당하면서, ‘소탐대실(小貪大失)’이란 말을 이용해서 시사 문제를 논한 일이 있다. 그런데 이 성어는 국내의 자전이나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1999)에는 나오지만, 일본의 『대한화사전』이나 중국의 『한어대사전』에는 나오지 않아서 의아했다.
사실 이 성어는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소탐소실(小貪小失), 대탐대실(大貪大失)’이라는 말을 잘 쓴다. ‘작게 탐내면 작게 잃고, 크게 탐내면 크게 잃는다’라는 뜻이다.
사실 ‘작은 것을 탐내다가 큰 것을 잃는다’라는 뜻이라면, 한문어법으로는 ‘탐소실대(貪小失大)’로 적어야 옳다. 물론 빈어(목적어)를 도치시키는 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탐대실’이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우리말 어순에 따른 듯하다.
그렇다면 이 성어는 출처가 없는가?
『표준국어대사전』은 출전을 밝히지 않았고 문헌 용례도 들지 않은 채, ‘소탐대실하다’라는 어구만 소개했다. 그런데 인터넷 사전에 전재된 모 백과사전은 이 성어의 출전을 명확히 밝혀 두었다. 그 해설은 다음과 같았다.
북제 유주(北齊 劉晝)의 『신론(新論)』에 나오는 말이다.
전국시대 진(秦)나라 혜왕(惠王)이 촉(蜀)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계략을 짰다. 혜왕은 욕심이 많은 촉후(蜀侯)를 이용해 지혜로 촉을 공략하기로 했다. 그래서 신하들로 하여금 소를 조각하게 해 그 속에 황금과 비단을 채워넣고 '쇠똥의 금'이라 칭한 후 촉후에 대한 우호의 예물을 보낸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 소문을 들은 촉후는 신하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진나라 사신을 접견했다. 진의 사신이 올린 헌상품의 목록을 본 촉후는 눈이 어두워져 백성들을 징발하여 보석의 소를 맞을 길을 만들었다. 혜왕은 보석의 소와 함께 장병 수만 명을 촉나라로 보냈다. 촉후는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도성의 교외까지 몸소 나와서 이를 맞이했다. 그러다 갑자기 진나라 병사들은 숨겨 두었던 무기를 꺼내 촉을 공격하였고, 촉후는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로써 촉은 망하고 보석의 소는 촉의 치욕의 상징으로 남았다. 촉후의 소탐대실이 나라를 잃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작은 것에 눈이 어두워져 큰 것을 잃는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2.
사전의 해설은 유주(劉晝)의 『신론(新論)』을 인용하기 했으므로 매우 충실하다고 할 만했다. 하지만 글을 읽어보면, ‘소를 조각하게 해 그 속에 황금과 비단을 채워 넣고 쇠똥의 금이라 칭한 후’라는 구절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게다가 진나라 혜왕이 ‘보석의 소’와 함께 촉나라로 보낸 수만 군사가 갑자기 무기를 꺼내 촉을 공격하였다는 이야기는 왠지 트로이 목마를 번안한 듯했다.
돌로 만든 소 때문에 촉나라가 망한 이야기는 『정관정요』의 「탐비(貪鄙)」편에도 나온다. 하지만 ‘소탐대실’과 가장 유사한 구절은 ‘소득이대실(小得而大失)’이 있을 뿐이다. 또 이야기도 위의 인용문과 다르다.
‘유주의 『신론』’은 일반적으로 ‘유자신론(劉子新論)’ 혹은 ‘유자’라고 부른다. 본래 유협이 지었다거나 작자 미상이라는 설이 있었으나, 대개 유주의 저술로 보고 있다. 이 책은 실은 『한위총서(漢魏叢書)』에 수록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총서는 명나라 때인 1590년 무렵에 정영(程榮)이 한·위·육조의 서적 38종을 경(經) ·사(史) ·자(子)의 3부로 나누어 수록한 것이다. 그 후 명나라 말기에 76종을 수록한 『광(廣)한위총서』가 나오고 청나라 때는 86종을 수록한 『증정(增訂)한위총서』가 나왔으며, 94종이나 96종의 서적을 모은 것도 나왔다. 이것들을 모두 ‘한위총서’라고 부른다. 『유자신론』은 정영의 38종본에 이미 들어 있다.
『유자신론』은 10권 55장인데, 위의 사전이 ‘소탐대실’의 출처로서 밝힌 이야기는 제49장 「탐애(貪愛)」에서 볼 수 있다. 거기에 “만일 작은 것을 탐하면 큰 이익은 반드시 망하게 된다(苟貪小利則大利必亡)”라든가 “작은 이익을 탐함으로써 큰 이익을 잃어버린다(以貪小利, 失其大利也)”라고 한 말들이 나온다. ‘소탐대실’은 그 말들을 토대로 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고사는 위의 사전이 밝힌 내용과는 조금 달랐다.
전국시대 진(秦)나라 혜왕(惠王)은 촉(蜀)나라를 공격하려고 했으나 촉 땅으로 들어가는 길을 알지 못했으므로 촉나라를 공략할 수가 없었다. 당시 촉나라 제후는 욕심이 많았으므로, 진나라 혜왕의 신하는 그 점을 이용해서 촉나라를 공략할 방법을 제시했다. 진나라 혜왕은 신하의 계책을 받아들여, 돌로 된 소 다섯 마리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꽁무니 쪽에 금을 쏟고는, ‘소가 금 똥을 눈다[牛便金]'고 거짓말을 퍼뜨렸다. 그러고서 진나라 혜왕은 돌로 만든 그 소들을 촉나라 제후에게 우호의 예물로 보내겠다고 했다. 촉나라 제후는 금 똥을 눈다는 소를 맞이하려고, 다섯 명의 역사들을 보냈다. 다섯 명의 역사는 그 돌로 된 소를 촉의 수도인 성도까지 끌고 갔다. 이 때문에 촉으로 들어오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진나라 혜왕은 촉으로 들어가는 길을 알게 되었으므로 장의(張儀)로 하여금 군사들을 이끌고 가게 해서 촉을 치게 했다. 이 결과 촉나라 제후는 붙잡히고 촉나라는 망하였다.
사실 양웅의 「촉왕기」, 『화양국지(華陽國志)』, 그것을 전재한 『역사(繹史)』에서는, 촉나라가 망한 것이 금 똥 누는 소 때문이라고 서술하지는 않았다. 「촉왕기」에서는 돌로 만든 소 때문에 촉으로 들어가는 길이 개통되었다고만 하였다. 『화양국지』에서는, 촉나라 제후가 돌로 만든 그 소가 금 똥을 누지 않는 것을 알고는 화를 내며 돌려보내면서 진나라 왕을 ‘동방의 소치는 녀석[牧犢兒]’이라고 조롱했다고 했다.
3.
『한위총서』는 조선후기의 몇몇 지식인들이 참조한 예가 있다. 이덕무는 「가가생(呵呵生)으로부터 유금간(柳金肝)이 송자당(宋子堂)에서 한위총서를 탐독한다는 말을 듣고, 장난삼아 시를 붙여 답을 구함」이란 시를 남겼다. 하지만 『유자신론』을 인용한 예는 많지 않다. 이른 예로는 이형상(李衡祥)이 ‘유주의 신어’라고 인용한 것이 있다.
그런데 다산 정약용은 이 책을 중시했다. 『주역』의 해설에서 두 군데 인용하였을 뿐 아니라, 『논어고금주』에서도 「선진」편의 구절을 해설하면서 ‘유자신론’을 인용했다. 곧, 「선진」편에 공자가 네 사람의 제자들을 논평하여 “고시는 우직하고, 증삼은 노둔하며, 자장은 외곬이고, 자로는 우아하지 못하다”라고 한 구절이 있다. 자로는 우아하지 못하다는 구절은 원문에 ‘유야언(由也 )’이라 되어 있는데, ‘언()’에 대해 옛 주는 ‘예법에 맞는 용태가 아니다’ 정도의 뜻으로 해석해 왔다. 정약용은 ‘유자신론’의 “자유(子游)가 갖옷을 걷고 속언을 하자 증자가 그를 가리키면서 빙그레 웃었다”라고 한 말을 재인용해서, ‘언( )’은 ‘언(諺)’과 같다고 논했다. 야담에 가까운 이야기이지만 ‘유자신론’의 기록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정약용은 『논어고금주』를 지을 때는 ‘유자신론’을 보지 않고 명나라 양신(楊愼)의 『단연여록(丹鉛餘錄)』에서 재인용하고 그 사실을 밝혔다.
옛 사람들은 문헌을 검색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문예적인 글이 아니라 문헌을 인용한 논증적인 글을 쓸 때는 대부분 출처를 밝혔다. 또 정약용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문헌에서 재인용할 때는 재인용 사실을 반드시 명시했다. 게다가 원래의 문헌을 그다지 왜곡하지도 않았다.
그렇거늘 문헌 검색이 쉬워진 오늘날, 정확한 해설을 생명으로 해야 하는 사전에서조차 원문을 왜곡해서 인용한다면, 이것은 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젊은이들은 상식뿐만 아니라 전문 지식도 인터넷 서핑을 통해서 얻는 일이 많으므로 내용상의 왜곡은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어찌됐든, 우리 사회에는 사전에 등재할만한 소탐대실의 사례가 너무 많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그 말을 처음 만든 분의 예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가 문득 어두운 상념에 젖게 되는 것은 왜일까?
글쓴이 / 심경호
·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 『김시습 평전』, 『한국한시의 이해』, 『한문산문의 내면풍경』, 『한시의 세계』, 『한학입문』, 『한시기행』, 『간찰 : 선비의 마음을 읽다』, 『산문기행 : 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 등
· 역서 : 『불교와 유교』, 『주역철학사』, 『원중랑전집』, 『금오신화』, 『한자 백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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