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의 Think Week / 전문가 진단 ◆
아사히야마
게다가 수십 명의 CEO가 나타나니 대접이 극진하다. 그러나 일본 공무원들의 철저한 준비와 동물원 직원들의 헌신적인 안내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다. 동물원 그 자체에 감동했다.
동물원을 찾는 사람들은 동물의 왕국을 연상하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동물들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제로 접하게 되는 것은 바로 옆에 있는 먹이도 내팽개친 채 졸고 있는 맥 빠진 동물들이다. 당연히 동물원은 애들이나 가는 곳이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에서는 이런 상식이 깨졌다. 동물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펭귄은 날아다니고, 원숭이는 분주하게 위층과 아래층을 오가며, 북극곰은 내 바로 옆으로 성큼 달려든다.
2007년 관리의 삼성이 경영 패러다임을 바꾸기로 결정한 뒤 창조경영을 선언했다. 창조경영 사례로 제시한 곳이 바로 이곳 아사히야마 동물원이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동물을 사육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준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관람객들이 직접 동물원 안으로 들어가도록 설계를 바꿨다. 폐쇄할 수밖에 없었던 시골 동물원이 성수기 동안 일본 최대의 동물원인 도쿄동물원보다 관람객을 더 많이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필자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에서 여러 달 동안 끌고 있었던 지지부진한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여가활동에서 불현듯 스치고 지나가는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힘도 있겠지만 여가의 힘이 컸다.
여가생활, 창조력의 원천
일이 아닌 여가를 주요한 맥락으로 하는 소비사회가 등장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주된 삶의 관심 자체가 일에서 여가로 이동하고 있다. 또한 창조성을 요구하는 후기현대사회의 특징상 창조력의 원천으로서 여가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있었기 때문에 전에 없이 여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이뿐 아니라 ‘쥬라기공원’이라는 단 한 편의 영화가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이 현대자동차가 일 년 동안 미국에서 벌어들인 돈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리고 한류열풍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체감하기 시작하면서 여가 산업의 중요성에 대한 각성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여가는 삶이고 산업이며 미래 국가경쟁력을 높여줄 수 있는 창조력의 원천이기 때문에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여가생활이 창의성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복잡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문제해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미국 시카고대의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말고 내가 몰입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라고 권고한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몰입하라”는 것이고 “몰입하면 창의성이 솟구친다”는 것이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주장하는 여가이론의 핵심이다. 여기에 비춰 보면, 지향해야 할 여가시간 활용 방법을 쉽게 알 수 있다.
크게 4가지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활동적이고 적극인 여가활동을 권장한다. 여가시간에 몰입할 수 있는 여가활동 유형과 여가활동 방법은 정해져 있다. 즉,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여가활동을 하는 사람이 소극적이고 정적인 여가활동을 하는 사람보다 더 몰입하는 경향을 보인다. 당연히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여가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만족도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높다.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여가활동을 한 이후에 창의성이 재충전된다.
둘째, 난이도와 기량이 조화를 이룬 여가활동을 해야 한다. 여가활동 만족도는 그 활동을 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의 기술을 습득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당연히 난이도가 높은 기술을 가진 사람의 여가활동 몰입도가 더 높고, 따라서 만족도도 높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면, 집안에서 멍청히 텔레비전을 시청한 사람보다 가족들과 함께 서울숲을 산책하고 온 사람이 더 즐거워하고, 초보자 코스에서 막무가내로 스키를 타는 사람보다 고급 코스에서 절묘하게 스키를 타는 사람이 더 행복해한다.
여가활동을 통해 창조력이 극대화되는 사람은 해당 여가활동의 난이도와 자신이 가진 기술의 함수관계를 잘 활용해서 여가활동에 몰입하는 사람이다.
셋째, 한 번에 한 가지 여가활동만 한다. 주변에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면 사람들은 쉽게 몰입한다. 반대로 한꺼번에 여러 가지 여가활동을 하는 사람은 절대 몰입할 수 없다.
일요일 저녁 한 가정의 거실에 텔레비전이 켜 있다. 그런데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고, 자녀는 온라인게임을 하며, 아버지는 신문을 읽는다. 평온해 보이지만 폭발 직전이다.
모든 가족들이 두 가지의 여가활동을 동시에 하고 있기 때문에 몰입하지 못한다. 겉보기와 달리 신경이 곤두서 있다. 이런 상태로 휴일을 보낸 CEO나 직장인에게 창의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한 번에 한 가지 여가활동으로 주의를 분산시키지 않는 싱크위크를 보낸 사람이 월요일 아침 일터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다.
마지막, 배워서 남 안 주는 여가활동도 집중력을 높여준다. 몰입을 방해하는 두 번째 요소는 무지다. 기량을 향상시킨다고 무리하게 수준에 맞지 않는 중급자 스키슬로프에 올라가 열 번씩 넘어지면서 겨우 내려오는 것은 특수훈련이지 여가가 아니다.
특수훈련을 통해 체력이 단련될 수는 있지만 창의성이 길러지지는 않는다. 중급자 슬로프에서 스키를 잘 타고 싶으면 잘 배워야 한다. 잘 배워야 잘 놀고, 잘 놀아야 잘할 수 있다. 돈보다 시간비용이 더 큰 CEO들이 왜 아사히야마 동물원을 찾아서 2박 3일이나 되는 천금 같은 시간을 보내는가! 왜 박봉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한밤중에 경영전문대학원으로 가서 MBA를 공부하는가! 사회의 전반적인 메커니즘이 지식기반 사회로 전환됐다. 노동만 전환된 것이 아니다.
싱크위크, 여가와 혼동하면 소용없어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둬야 할 사실은 여가와 싱크위크는 서로 상생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사실 여가와 싱크위크는 둥근 삼각형이라는 말처럼 모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싱크위크형의 여가로서 휴가는 서로 윈윈을 할지 아니면 충돌을 일으킬지 예측하기 힘들다.
마당 쓸고 돈을 줍게 될지 아니면 국 쏟고 사발 깨고, 그것도 모자라 발까지 데이게 될지 분간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여차하면 제대로 놀지도 못하면서 일하고 난 뒤보다 더 피곤하기만 한 것이 싱크위크일 수 있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고 여가와 창의성의 윈윈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여가 그 자체가 목적이 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여가시간은 즐겁고, 근무시간은 힘들다고 생각한다. 즐거움과 괴로움을 가르는 여가와 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보상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즉, 여가가 즐거운 것은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고 일이 힘든 것은 돈을 받기 때문이다.
싱크위크 역시 이번에 뭔가를 하나 건져 가야 한다고 다짐하는 순간 힘든 일이 돼 버린다.
둘째, 무엇을 해야 할지, 어느 정도 잘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놀이적 인간(Homo Ludens)은 강나루 건너 밀밭 길을 가는 나그네가 아니다. 잘 배운 사람이 계획을 잘 세워서 일상의 짐을 벗어던지고 떠나는 것이 여가로서 싱크위크다. 경로화된 일상의 틀에 갇혀 있을 때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을 자연스럽게 발견하고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발견과 체험은 창의성의 밑거름이 된다.
셋째, 몰입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피하고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가족여행을 다녀온 직장인들이 다시 출근해서 동료들과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놀아 주고 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아이들 또는 아내를 즐겁게 해줬다는 말이다.
과연 놀아 주고 있는 아버지 또는 남편과 같이 여행을 갔다 온 가족들이 즐거웠을까?
자기 자신과 시간 그리고 주변을 모두 잊은 채 스스로 즐기고 있는 아버지 또는 남편과 같이 있을 때 모든 가족들이 즐거울 수 있다. 몸만 놀고 있는 껍데기는 가고, 몸(행위)도 마음(의식)도 다 놀고 있는 진짜가 와야 한다.
[최석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레저경영전문대학원장 sokhocho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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